(조선일보 2018.06.19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바야흐로 태양의 계절이다. 많은 사람이 바다로 몰려갈 것이다.
그런데 정작 해변에 다다르면 행여 태양광 입자 하나라도 몸에 닿을세라 선크림으로 철통 같은
방어막을 친다. 태양을 바라며 먼 길을 달려와서는 홀연 몸서리치며 거부하는 이 모순을 어찌하랴?
선크림 남용이 해양 환경에 치명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선크림에 들어있는 옥시벤존(oxybenzone)이 산호를 죽이고 있다.
매년 선크림 6000~1만4000t이 산호초 지역에 녹아 들고 있는데 농도가 6.5x10-11만 돼도 영향을 미친다.
이는 올림픽 수영 경기장 6~7개에 떨어뜨린 물 한 방울 수준이다.
피부암 발병 원인의 90% 이상이 햇빛 자외선이지만 그건 아주 오래 쬐었을 때 얘기다.
자외선에는 UV-A, UV-B 두 종류가 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선크림은 모두 UV-B를 차단할 뿐 UV-A에는 거의 효력이 없다.
파장이 긴 UV-A는 피부 깊숙이 파고들며 콜라겐 단백질을 파괴해 피부암과 더불어 피부 노화를 일으킨다.
온종일 지칠 줄 모르고 땡볕에서 뛰놀 아이들에게는 선크림을 발라줄 필요가 충분하다.
그러나 시간 대부분을 파라솔 밑에서 보낼 어른들은 귀찮게 선크림을 바를 까닭이 없다.
필요도 없는 선크림을 바르느라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사람이나, 발랐으니 안심하고 너무 오래 일광욕하는 사람이나
어리석긴 마찬가지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보라 했더니 "햇빛이나 가로막지 말아달라"고 대답했다는
디오게네스의 일화가 떠오른다. 예전에 우리 인류는 체내에서 스스로 만들 수 없는 비타민D를 피부를 햇볕에 그을려
충당했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주고 비타민 알약을 사서 먹는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에 따르면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 곁을 떠나며 "내가 만일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정녕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단다.
천하의 알렉산더 대왕도 가리지 못한 태양을 선크림 따위로 가로막지 말자.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1] 칸막이와 소통 (0) | 2018.07.25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1] KTX 꼴불견 (0) | 2018.07.23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80] 세계 침팬지의 날 (0) | 2018.07.18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9] 저주의 정화수 (0) | 2018.07.11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78] 전재용 선장과 예멘 난민 (0) | 2018.07.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