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4.04.1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그렇지 않아도 춘곤증으로 인해 눈꺼풀이 천근만근인 계절인데 밤새 칭얼거리는 아기 때문에
잠을 설친 부부들에게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데이비드 헤이그(David Haig)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아기의 칭얼거림이 동생의 탄생을 지연시키려는
진화적 적응이라는 가설을 내놓았다. 그는 일찍이 한 몸을 이루는 유전자들도 늘 일사불란하게
협력만 하는 게 아니라 각자 자기의 이득을 위해 경쟁한다는 '유전체 갈등(genomic conflict)' 이론을
정립해 일약 유명해진 진화생물학자다. 그의 이론은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그래서 마냥 숭고하고
아름다워야 할 임신 과정이 실제로는 임산부에게 엄청난 고통을 안겨주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가지런히 설명해 주었다. 태아와 엄마의 갈등은 둘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음에 기인한다.
엄마에게 태반 속 아기는 기껏해야 유전자의 50%를 공유하는 존재일 뿐이다. 아기의 유전자 절반은 '철천지(徹天之) 남'의
유전자이다. 물론 사랑하는 남편의 유전자이지만, 사실 남편이란 존재는 근친결혼이 아니라면 유전적으로 철저한 남이다.
유전자의 절반이 다른 사이에서 완벽한 협력이란 애당초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태아는 엄마로부터 좀 더 많은 영양분을
빨아당기려 해 종종 임신 빈혈까지 일으키는 반면 엄마는 엄마대로 장차 태어날 아이들을 생각해 무한정 뺏길 수만은 없는
상황이라 임신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수반한다.
헤이그 교수는 천사처럼 새근새근 잘 자던 아기들도 생후 6개월을 즈음하여 밤중에 자주 깨어나 보채기 시작한다는 데
주목했다. 이 무렵 더 이상 젖을 빨리지 않으면 산모는 다시 임신 가능한 생리 상태로 돌아간다.
엄마가 곧바로 임신하면 동생이 너무 일찍 태어나 부모의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기 때문에 태아는 자꾸 엄마를 깨워
젖을 물리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한 것이다. 실제로 터울이 촘촘한 형제들의 사망률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높다. 그렇다고
해서 하룻밤에도 몇 번씩 깨어나 칭얼대는 아기를 벌써부터 동생을 시기하느냐며 너무 타박하지는 마시기 바란다.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37] 개치네쒜 (2017.09.1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8/2017091802790.html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56] 농사를 짓는 동물 (2016.03.0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2/29/201602290318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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