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03.01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우수도 지나고 경칩이 낼모레니 어언 또다시 농사철이다.
성종실록에는 우수에 삼밭을 갈고 경칩에 농기구를 정비한다 했다.
예로부터 우리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며 농업이 우리 삶의 근본이라 믿었다.
하지만 현생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온 25만년 중 농경을 하며 산 기간은 최근 1만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약 1만1500년 전 나일강에서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에 이르는
'비옥한 삼각지대'와 이란의 골란 지역에서 처음으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 이전의 24만년 동안에는 침팬지와 다름없이 수렵 채집 생활을 하며 살았다는 것이다.
농사에 관한 한 우리의 대선배가 있다.
중남미 열대에서 식물의 잎을 뜯어다 버섯을 길러 먹는 잎꾼개미는 무려 5500만년 동안 농사를 지어왔다.
각종 자연 다큐멘터리는 물론 '정글의 법칙'에도 소개된 바 있는 이 개미는 원래 '가위개미'로 불렸다.
이들이 나뭇잎을 자를 때 아래턱뼈를 마치 가위처럼 사용하는 줄 알고 붙인 이름이지만 실제로는 톱질을 하듯 자른다.
그래서 나는 산에서 나무를 해오는 사람을 나무꾼이라 부르니 이들을 '잎꾼'이라 부르자고 제안했다.
지금 충남 서천 국립생태원에는 농축산검역본부의 도움으로 남미 섬나라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채집해온 잎꾼개미가
전시되고 있다. 작은 잎꾼들이 쉴 새 없이 이파리를 잘라 입에 물고 집으로 돌아오면 더 작은 개미들이 그 이파리들을
잘게 부순 다음 그걸 거름 삼아 버섯을 경작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지켜볼 수 있다.
북미와 유럽의 몇몇 자연사박물관은 여러 해 전부터 잎꾼개미 전시로 인기몰이를 톡톡히 해왔지만 대부분 잎꾼의 행렬이
양팔 간격 두엇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국립생태원의 잎꾼들은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잎을 물고 장장 10m가 넘는 길을
행군한다. 나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평생 어디에서도 이보다 더 신기하고 재미있는 전시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37] 개치네쒜 (2017.09.19)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9/18/201709180279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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