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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명저] "이념에 갇힌 권력이 민주주의 위기 가속"

바람아님 2018. 11. 15. 07:31

한국경제 2018.11.01. 00:24


움베르토 에코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항상 옳다고 주장하는 세력에 맞서 싸우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진다. 모든 진실이 모든 이의 귀에 들리는 것은 아니다. 진실은 선의나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지 않는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지식인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횃불이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는 이탈리아 작가 움베르토 에코(1932~2016)의 칼럼 일부를 모은 책이다. 이 책의 원전(原典)은 에코가 20여 년 동안 주간지 ‘레스프레소’에 기고한 칼럼을 모아 펴낸 《미네르바의 성냥갑(LA BUSTINA DI MINERVA)》이다.


주로 1980~1990년대 이탈리아 정치·경제·사회 분야를 논평한 것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여론 조작 가능성, 다수의 횡포, 균형 잃은 언론 보도, 정치권 불통(不通) 등 세계 각국이 공통적으로 직면한 문제들을 날카롭게 비판했기 때문이다.


TV 재판중계는 '인민 재판'

에코는 민주국가에서 여론 형성 통로가 돼야 할 매스 미디어와 정당, 정치권 등이 제 기능을 못 해 되레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 정당 등 ‘사회적 공기(公器)’가 시청률과 정권 장악 경쟁, 정파적 이익, 이념 등에 매몰돼 여론을 왜곡하고 특정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고 봤다.


에코는 매스 미디어 중 가장 파급력이 큰 방송의 선정성을 특히 우려했다. 방송이 시청률 경쟁에 내몰려 선정적이고 편파적인 보도를 하면 민의의 기반인 ‘진실’이 설 자리를 잃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TV의 재판 중계다. “방송이 특정 세력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로 인한 사회적 부작용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그의 경고다.


“TV 중계는 유무죄 다툼이 있는 피고인을 공개적인 웃음거리로 만들고 시청자 수백만 명의 조롱에 노출시킨다. 이런 상황에서는 헌법적 가치인 ‘무죄추정 원칙’이 지켜질 리 없다. 재판이 마녀사냥식 인민재판으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검찰은 피고인이 얼마나 사악하고 신뢰할 수 없는 존재인지 증명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경우가 너무 많다. 사건과 상관없는 별건수사를 벌여 피고인의 비도덕적 행위를 까발리거나 각종 의혹을 제기한다. 우리는 TV를 통해 정의가 집행되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정의를 해석하는 TV를 보고 있을 뿐이다.”


에코는 ‘민의’로 포장된 여론조사의 위험을 경계했다. 자의적 잣대로 설계된 각종 여론조사가 민의 왜곡에 그치지 않고, 여론을 빙자한 정책 합리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제 국민은 쏟아지고 있는 여론조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개인적으로 최근(1990년대 이탈리아)의 여론조사 행태를 신뢰할 수 없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곧바로 투표하러 가는 것’과 ‘에이즈로 죽는 것’ 중에서 무엇을 선호하느냐고 묻는 것과 다름없다. 진정한 민의를 찾아내려면 여론조사를 여론조사해야 할 판이다.”


에코는 특정 이념과 신념에 사로잡힌 정치권력은 민주주의 위기를 가속화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을 통한 해결이라는 민주적인 방식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정책 결정을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악의 문제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념의 장막에 갇힐수록 정치 지도자는 비판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다. 충성 경쟁을 벌이는 추종자 패거리 안으로 피신하는 경향이 강하다. 추종자들은 ‘질투심이 많고 타락한 모략가(반대파)의 농간에 신경 쓰지 말라’고 말하며 더욱 이념성 짙은 정책을 주문한다. 지도자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추종자들을 정부와 공공기관 요직에 앉힌다. 이런 폐쇄성은 민의와 동떨어진 인식과 정책을 낳게 한다.”


지식인의 시대적 책무는 '진실 대변'

에코는 매스 미디어와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하는 국가일수록 지식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역사의식과 소명의식을 가진 진정한 지식인은 정파적 이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들이야말로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사회적 대결 구도를 균형적인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지식인의 호소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다. 호소가 설득력을 발휘하려면 타이밍이 중요하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대중이 제대로 깨닫지 못할 경우에 호소가 의미가 있다. 지식인이 존경받는 것은 권력을 비판할 용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진정한 지식인은 역사와 시대가 자신에게 부여한 ‘진실 대변’이란 책무를 실천한다.”


에코는 지식인의 현실정치 참여에는 부정적이었다. 자칫 정파적 이익을 대변하는 얼굴마담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식인이 열정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원대한 비전 제시 없이 대중에게 잘 알려진 자신의 작품, 얼굴을 내세워 국회의원이 되거나 행정부에 입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지식인의 의무는 정치 권력의 교체를 요구하거나, 바람직한 정치 권력이 형성되도록 기여하는 것에 그쳐야 한다. 비어 있는 요직을 채우는 ‘얼굴’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