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自然과 動.植物

[IF] 수직으로 자라는 해바라기도 친족 옆에선 굽어 핀다

바람아님 2019. 1. 10. 11:17

(조선일보 2019.01.10 이영완 과학전문기자)


서로 관련없는 식물 심으면 뿌리 뻗어 영양분 경쟁 나서
친족과 함께 자라면 공간 양보, 평소보다 꽃 더 많이 피워… 공격 등 위험 상황도 잘 인지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한다. 혈연(血緣)을 뿌리칠 수 없다는 뜻이다.

개미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동물 세계에서는 유전자를 공유하는 친족(親族)들을 먼저 챙기는 행동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친족을 도우면 결국 나와 같은 유전자가 후대에 전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최근 식물도 친족을 알아보고 배려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처음엔 허무맹랑한 주장으로 무시됐지만 지난 10여 년 동안 식물이 친족을 위해 잎과 꽃, 뿌리의 생장을 조절한다는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면서 정설로 굳어지고 있다. 해바라기도, 벼도 다 잎이 안으로 굽고 있었던 것이다.


◇친족 위해 뿌리·꽃 희생하는 식물


식물이 친족을 알아본다는 사실은 2007년 캐나다 맥매스터대의 수잔 더들리 교수가 처음 알아냈다. 북미(北美) 해안 지역에는

다육성 식물인 서양갯냉이가 자란다. 연구진은 한 화분에는 유전적으로 가까운 갯냉이들을, 다른 쪽에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갯냉이들을 심었다. 국제학술지 '바이올로지 레터스'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갯냉이는 생면부지 남 옆에서는 땅속에서

뿌리를 있는 대로 뻗어 영양분 확보 경쟁을 벌였다. 반면 친족과 같이 자라면 상대도 뿌리를 내리도록 공간을 양보했다.


당시에는 더들리 교수의 실험이 잘못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지난 4일 "더들리 교수의

논문이 나온 지 10여 년 동안 식물의 친족 인식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랐다"고 밝혔다.





해바라기는 유전적으로 관계가 먼 개체가 옆에서 자라면 수직으로 자라면서 햇빛과 영양분을 두고 생존 경쟁을 한다. 하지만 친족 옆에서 자라면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서로 어긋나게 자란다. 같이 잘 자라도록 배려한 탓인지 친족 재배지에서는 해바라기유(油) 생산량이 47%나 증가한다.

해바라기는 유전적으로 관계가 먼 개체가

옆에서 자라면 수직으로 자라면서 햇빛과

영양분을 두고 생존 경쟁을 한다.

하지만 친족 옆에서 자라면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서로 어긋나게 자란다.

같이 잘 자라도록 배려한 탓인지 친족

재배지에서는 해바라기유(油) 생산량이

47%나 증가한다. /미 농무부


가장 최근 연구 결과는 식물이 친족을 위해 꽃도 달리 피운다고 했다.

스위스 로잔대 연구진은 지난해 5월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모리칸디아 모리칸디오이데스'라는 학명(學名)을 가진

스페인 허브가 친족들과 같이 자라면 꽃을 더 많이 피운다고 발표했다.

그러면 꽃가루받이 곤충이 더 많이 찾아와 후손을 퍼뜨리기에 유리하다는 것.

특히 스위스 연구진은 허브의 행동이 개미나 꿀벌이 친족에게 보이는 이타적(利他的) 행동과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일개미와 일벌도 암컷이지만 알을 낳지 않는다. 대신 여왕개미, 여왕벌이 낳은 알을 제 몸처럼 돌본다.

비록 직접 낳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유전자가 상당 부분 같아 결국 자신의 후손을 퍼뜨리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허브도 꽃을 더 피우면 씨를 맺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곤충이 많이 찾아 꽃가루받이가

늘면 자신이 아니더라도 유전자가 비슷한 다른 친족 식물들이 씨를 퍼뜨릴 가능성은 커진다는 말이다.


◇천적 경고 신호도 집안끼리 통해


식물도 동료와 대화할 수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지난 1983년 사이언스에 사탕단풍나무가 휘발성 화학물질을

공기 중에 분비해 천적의 공격과 같은 위험 상황을 다른 식물들에 전파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한 식물이 공격을 받으면,

이웃에서 아직 공격을 받지 않은 식물도 방어 물질을 분비하고 있었다.

먼저 공격받은 식물이 보낸 경고 신호를 받고 이미 대응 태세를 갖춘 덕분이다.


친족 알아보는 식물


말도 더 잘 통하는 사람이 있듯 식물의 경고 신호도 친족 사이에 더 효과가 크다.

미국 UC데이비스의 리커드 카반 교수팀은 큰쑥을 대상으로 한 실험을 통해 친족들은 경고 신호를 공유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큰쑥이 해충의 공격을 받으면 휘발성 화학물질을 공중에 분비한다. 다른 식물은 이를 감지하면

바로 독성 물질을 분비해 천적에 대비한다. 이때 친족이 경고 신호를 보내면 방어 물질이 더 많이 분비된다는 것이다.


◇농업 생산성 높일 새로운 방법


큰쑥과 서양갯냉이과학자들은 식물의 친족 챙기기를 이용하면 비료나 농약을 추가하지 않고도 농작물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고 기대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대의 호르헤 카잘

교수팀은 두해살이 풀인 애기장대가 옆에서 친족이 자라면 상대에게 그늘이 지지 않도록

잎이 자라는 방향을 바꾼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또 애기장대들은 서로 같은 높이에서

잎이 자라게 해 햇빛이 상대에게 더 많이 반사되게 했다.

이로 인해 친족 옆에서는 생장 속도가 더 빨랐다.


카잘 교수팀은 2017년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발표한 논문에서 해바라기에서

같은 효과를 확인했다. 일반 농가에서는 1㎡당 5.1포기의 해바라기를 심는데,

실험에서는 친족 관계의 해바라기를 14포기까지 심었다.

이 상태에서 이전처럼 곧게 자라면 잎들이 겹쳐 서로 햇빛을 가리게 된다.

친족 해바라기들은 대신 바로 옆 해바라기와 어긋나게 자랐다.

그 결과 해바라기 기름을 47%나 더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중국 베이징 농대 연구진도 지난해 친족을 인식하는 벼를 심어 생산량을 5% 높이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