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01.15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박제가 '북학의'
서지문 고려대 명예교수
조선시대 실학자 박제가는 중국을 가서 보고 조선의 지배층이 후생(厚生)에 힘쓰지 않아서
백성이 극도로 불결한 환경에서 인간 이하의 생존을 하는 것에 통분했다.
외교관을 양성하지 않는 것도 박제가가 통탄한 조선의 후진성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은 중국에 매년 정기·부정기 사절을 보냈는데, 사대부였던 사신들은 아무도 중국어를
연마한 사람이 없어서 국경[만주 봉황성]부터 북경까지 2000리 여정에 통과하는 고을 관원들과 안면을 트는 경우가
없었다고 한다. 통역관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사신은 숙소에만 틀어박혀 있어서
중국의 실정(實情)과 문물을 살피지 못하고, 중국의 통행 담당 관리가 뇌물을 요구하면 기꺼이 바칠 뿐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매년 다른 사람을 사신으로 보내니 외교 경륜을 쌓을 수가 없었다.
더욱이 조선 외교의 입이었던 통역관 선발은 부정이 심해서 역관이 제대로 중국어를 구사하는지도 알 수 없었고,
역관의 우선적 관심사는 거대한 이윤이 남는 교역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나라의 암흑 시절 세계를 누비며 조선의 독립을 지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마침내 건국을 성취한 후 신생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정과 지지를 이끌어 낼 외교관의 기근이 얼마나
안타까웠겠는가? 그래서 외교관 양성은 지난 70년간 대한민국 주력 프로젝트의 하나였는데 현 정부 들어서
외교관이 사실상 용도 폐기된 듯한 느낌이다. 이 정부는 외교부 기능도 외교관 존재 이유도 관심 밖이고,
대사직은 '공신'들에게 나눠 줄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대통령이 자기 주재국에 국빈으로 오는데 전방위 분투로 매끼 알찬 행사를 마련하지 않고
열 끼 중 여덟 끼를 혼자 밥 먹게 한 대사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할 정도로 대사는 장식용인가?
한국 정부는 일본이 외교를 '국내 정치용'으로 한다고 비꼬면서 일본에 대해서 국제 교류의 기본 규칙을 무시한
도발과 강요를 서슴지 않으니, 상대편을 격분케 해서 우리 국민의 적대감을 불붙이려는 행위가 아닌가?
한편 혹시라도 경륜 있는 외교관이 정부의 외교 행태를 비판할까 봐 강력한 경고를 날리는 것 같다.
우리가 이렇게 맹방 약 올리기 '실험'을 하다가 그들의 대응 조치로 경제·안보 파탄을 맞으면
우리 민족의 정신적 승리라고 자축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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