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시론>文정부의 무모한 자기합리화

바람아님 2019. 2. 19. 09:04
문화일보2019.02.18. 12:20



물러난 靑수석, 고용 참사 변명
최저임금 과속 인상 책임 회피
‘포용적 성장’ 修辭였음을 자인
전문가들 “잘못된 실험 중단”
도와주어야 할 계층부터 피해
이론·현실·實證 측면서 입증


요즘 경제 정책에 관한 비판이나 지적에 청와대나 정부가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 ‘자기합리화’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소득주도성장의 ‘설계자’로 불리는 홍장표(부경대 교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 최근 일갈을 했다. “최저임금 탓 일자리 대폭 감소 주장은 소설”이라는 제목이 달린 한 매체와의 인터뷰였다. 요지는 2018년 연간 취업자 증가 폭(9만7000명)이 전년 대비 22만 명이나 줄어든 게 모두 최저임금 인상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최저임금 인상으로 줄어든 일자리는 3만∼5만 명 정도로 보고 있고, 이들은 임시·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에 집중적”이라고 했다. 나머지는 제조업 구조조정·인구구조변화 등의 영향이라는 반박이다.


고용참사의 원인이 복합적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홍 전 수석은 최저임금 급격 인상과 더불어 주 52시간 근로제가 기업 인건비 상승의 요인이 되고, 그게 전체 고용 시장 위축의 가장 큰 방아쇠가 된 상황에 대해선 복기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과거로의 회귀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못을 박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4일 자영업자·소상공인들과의 오찬에서 최저임금 인상 부담에 대한 호소가 터져 나오자 “미안하다”면서도, “길게 보면 가야 하는 것”이라고 한 말과 오버랩되는 것은 순전히 ‘기분 탓’일까. 더 흥미로운 것은 홍 전 수석이 정의하는 포용성장론이다. 그는 “(일부 언론과 야당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간에 대립 구조를 만들었다”면서 “이를 정리하려 상위에 (포용적 성장을) 덧씌웠다. 포용적 성장은 넓은 의미에서 경제정책 3축을 아우르는 레토릭(수사)”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의 연설마다 그토록 자주 등장했던 ‘포용성장’에는 깊은 경제철학도, 치밀한 준비도 없었던 셈이다. 그저 ‘가져다 붙인’ 말이란다.


공교롭게도 홍 전 수석의 ‘어설픈 합리화’가 전해진 지난 14∼15일, 국내 경제학자들은 ‘2019 경제학 공동학술회의’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3년 차의 경제 현실을 조명했다. 수사에 불과한 포용성장이 이슈였다. ‘직관’한 결론은 “당장 정책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포용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조급함을 경계해야 한다”(이우진 고려대 교수)는 주장도 있었다. 일부는 장외(場外)에서 “논문 몇 편이 전체 경제학계를 대표하진 않는다”고 거들기도 했으나 회의장의 저류와는 거리가 있었다.


학자들이 지적한 문제는 상충하는 정책, 검증되지 않은 실험을 고집한다는 것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이 상승할 때 투자, 고용, 순수출, 생산성이 감소하지 않아야 유효한 것인데 이를 현 정부 시절 1년과 직전 정부 4년간을 비교한 최인·이윤수 서강대 교수의 실증분석 결과는 ‘실패’였다. 투자성장률은 -5.14%포인트, 고용증가율은 -0.16%포인트,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0.13%포인트를 기록했다. 정부가 ‘절반의 성공’이라고 내세우는 소비 증가에 대해서도 “국내 소비의 증가에 의한 것이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고 마침표를 찍었다.

안충영 중앙대 석좌교수는 간명하게 “소득주도성장은 기업 혁신을 도외시한 합성의 오류”라고 정리했다. 공방도 있었다. 이정민 서울대 교수는 “2018년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증가율이 1%포인트 낮아졌다”고 한 반면, 황선웅 부경대 교수는 “임금노동자에겐 최저임금 인상 효과가 부정적으로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분석 방법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 급격 인상이 고용시장에 역기능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은 분명했다. 그 피해자가 현 정부가 선의를 뒀던 계층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박정수 서강대 교수가 결론과도 같은 제언을 했다. “재정 확대와 임금 상승을 통한 총수요 진작은 지속성장의 근본 해법이 되지 못한다. 정책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실효성에 대해 철저한 검증이 있어야 하고, 수립과정의 현대화를 도모해야 한다.” 점잖게 표현했으나, 국민을 상대로 한 무모한 실험을 그만두라는 얘기다. 물론 전문가들도 틀릴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경우를 연구해 봤기에 실수할 가능성이 보통 사람보다 훨씬 적다. ‘자기가 다루는 주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악의 실수들과, 그 실수를 피하는 법에 관해 웬만큼 알고 있는 사람’이다. 현대 물리학의 선구자인 베르너 하이젠베르크의 말이다. 전문가들의 고언도 외면할 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