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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23] 성 로살리아와 다양성

바람아님 2019. 5. 29. 20:30
조선일보 2019.05.28.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얼마 전 카오스재단의 강연 시리즈 '기원, 궁극의 질문들'에 참여해 강연했다. '성 로살리아의 축복과 쥐라기 공원'이라는 제목으로 다양성의 기원에 대해 강의했다. 성 로살리아는 시칠리아의 주도 팔레르모의 수호성인인데 어쩌다 다양성의 상징이 되었을까?

생물 다양성에 관한 과학적 연구는 흔히 '미국 생태학의 아버지'라는 예일대 허친슨(G. E. Hutchinson) 교수의 1959년 논문에서 시작됐다. '성 로살리아에게 바치는 경의(Homage to Santa Rosalia)'라는 제목의 이 논문에서 허친슨 교수는 팔레르모를 방문했을 때 그리 크지도 않은 연못에 물벌레 두 종이 공존하는 걸 보고 자연에서는 왜, 그리고 어떻게 많은 종류의 동물이 한데 어울려 사는지 연구하자고 독려했다.

훗날 그는 생태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인 '니치(niche)'를 제창하며 스스로 이 문제에 해답을 제시했다. 니치는 서양 건축에서 벽면을 반원형으로 오목하게 파내어 조각품 따위를 올려놓는 공간을 일컫는데, 허친슨 교수는 생물이 생태계에서 차지하고 있는 시·공간 내지는 기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이를 '생태적 지위'라 부르기도 한다. 많은 종이 공존하는 생태계일수록 니치가 그만큼 다양하게 세분되어 있다.

그런데 중동학자 이희수 한양대 교수에 따르면 성 로살리아를 모셔 놓은 팔레르모 대성당 역시 문화적 다양성이 남다르단다. 대성당 고딕 첨탑에 이슬람 장식이 완연한 한편, 실내 기둥에는 아예 코란 구절이 새겨져 있다. 팔레르모는 1072년 노르만 왕조가 들어서기 전까지 234년 동안 아랍 왕조가 지배한 도시였다. 성당은 1184년에 지어졌는데 다양한 시대 양식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며 뒤섞여 있다. 비록 왕조는 바뀌었어도 파괴와 제거가 아니라 포용과 융합 정신으로 다양성을 지켜낸 드문 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