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다 사람들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면 우리는 대개 쑥스러워 어쩔 줄 모른다. 사람들은 누군가 방에 들어오니 그저 흘끔 쳐다본 것뿐인데 우리는 괜스레 옷매무새도 가다듬고 머리도 매만진다. 그러나 침팬지 사회라면 이 정도로 그치지 않는다. 개미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자연계에서 인간을 제외한 그 어떤 사회성 동물에게도 낯선 동물의 출현이 이처럼 평온할 순 없다. 남의 영토를 배회하다 발각된 개미는 졸지에 그 나라 일개미 수십 마리에게 둘러싸여 능지처참을 당한다. 늑대나 사자 혹은 영장류 사회에서 남의 무리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은 자살 행위와 다름없다.
그러나 우리는 우범 지역만 아니라면 약간 겸연쩍을 뿐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진 않는다. 생판 모르는 수백 명과 함께 비행기에 올라타 몇 시간씩 하늘을 날고, 수천 명이 고함을 질러대는 축구 경기장에 어린 아들 손 잡고 겁 없이 들어선다. 누가 언제 어떻게 덮칠지 모를 컴컴한 영화관에 앉아 화면에 코를 박은 채 울고 웃는다. 신기하지 않은가?
나는 44년이나 이어온 서울대 사진 동아리 '영상'의 초대 회장을 지냈다. 하지만 이제 와서 고백하건대 당시 나는 카메라도 없었고 솔직히 사진도 찍을 줄 몰랐다. 사진은 나중에 하버드대에서 동물행동학을 전공하며 훗날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속 사진기자가 된 동료 대학원생 마크 모핏(Mark Moffett)에게 배웠다.
평생 열대를 휘돌며 동물 사진만 찍던 그가 최근 'Human Swarm'이라는 책을 냈다. '사람 떼'쯤으로 번역될 법한 이 책에서 그는 우리 뇌의 진화 단계에서 언젠가 낯선 사람을 손쉽게 받아들이면서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이 책을 읽었다면 몸집과 두뇌가 더 작은 우리가 어떻게 네안데르탈인을 물리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전혀 다른 설명을 내놓았을 것이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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