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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26] 애도

바람아님 2019. 6. 19. 08:28
조선일보 2019.06.18.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평생 화해와 평화, 그리고 여권 신장에 큰 족적을 남긴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세상을 떠났다. 정치권에서는 오랜만에 여야를 막론하고 추모 물결이 이어졌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조의문과 조화도 당도했다.

동물사망학 또는 비교사망학이라는 분야가 있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도 죽음을 애도하는지를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영장류가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은 1879년 브라운(Arthur E. Brown)의 보고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수컷 침팬지가 암컷을 잃은 후 괴성을 지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제인 구달 박사는 어미 침팬지가 세상을 떠나자 여덟 살 반이나 먹은 새끼가 심각한 우울증 증세를 보이다가 한 달도 안 돼 목숨을 잃은 사건을 보고했다.

동료의 죽음을 단체로 애도하는 모습은 코끼리에게서 가장 자주 관찰된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웹사이트에는 죽은 동료의 사체에 앞발과 상체를 얹고 코로 몸을 쓰다듬는 행동이 담긴 동영상이 올라 있다. 케냐 삼부루 국립공원에서는 으뜸암컷(Alpha female) 코끼리가 사망했을 때 인근 지역에 사는 코끼리 가족 다섯이 모두 찾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도 했다.

죽음을 애도하는 행동은 두뇌 용량이 큰 영장류, 코끼리, 고래에게서만 보인 게 아니다. 바다사자, 늑대, 개, 고양이는 물론, 새들도 죽음을 애도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동료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으로 가장 자주 관찰된 새는 흥미롭게도 까치다. 유튜브에는 세계 각지에서 까치들이 동료의 주검에 모여들어 마치 포유동물처럼 흔들어 깨우려 하거나 한참 동안 자리를 지키는 동영상이 떠 있다.

죽음을 슬퍼하고 마치 장례 의식을 치르는 듯한 행동은 이제 다양한 동물에게서 관찰됐지만 주검에 모여든 동물은 대개 가족과 친지로 보인다. 여사가 가시는 길에는 생면부지 일반인의 애도가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