其他/최재천의자연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28] 한 해의 한가운데

바람아님 2019. 7. 3. 09:22
조선일보 2019.07.02.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오늘 7월 2일은 한 해의 한가운데다. 올해가 시작된 지 어언 182일이 지났고 이제 꼭 182일이 남았다.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시작하면 끝마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절반을 마치기 전에는 시작조차 하지 않은 셈"이라는 영국 시인 키츠의 궤변도 곱씹어볼 만하다.

마라톤에 비유한다면 우리는 지금 반환점(halfway point)을 돌고 있다. 절반을 달렸으니 시작은 확실하게 한 셈이고 이제 마무리만 잘하면 된다. 숨가쁘게 여기까지 달려온 당신에게 할 얘기인지는 모르지만, 또 한 번 심기일전해 다시 시작하면 나머지 절반도 너끈히 잘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저 평범하게 반환점을 돌 게 아니라 삶의 전환점(turning point)으로 만들어보자. 수학에서 말하는 변곡점(inflection point)이 될 수도 있다. 삶의 요철(凹凸)이 바뀌는 그런 순간 말이다.

국가대표 연기파 배우 김명민이 주연한 '페이스 메이커'라는 영화가 있다. 비록 흥행에는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지만 평생 2등을 밥 먹듯 했던 내게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팀 동료를 1등으로 만들기 위한 보조 주자 역할을 완수하고 조용히 물러나야 했지만 끝내 욕망을 억누르지 못해 완주하고 만다.

영어권에서는 페이스 메이커를 종종 '토끼'라 부른다. 실제로 육상 경기에서는 토끼가 멈추지 않고 달려 뜻밖의 우승을 거머쥔 예가 심심찮게 있다. 1994년 로스앤젤레스 마라톤에서 페이스 메이커로 고용된 폴 필킹턴은 도와야 했던 선수가 일찌감치 떨어져 나가는 바람에 끝까지 달려 우승했다. 그때 그의 나이가 서른다섯이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도는 당신에게 완주를 주문한다. 설령 당신이 기껏해야 페이스 메이커 수준의 삶을 살고 있더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화려한 반전이 찾아올지 모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