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은 미래 세대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고들 한다. 이제는 하도 많이 들어서 이렇다 할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적어도 우리 세대가 누린 만큼 미래 세대도 누릴 수 있도록 자연을 잘 보존해 물려줘야 한다는 취지에서 나온 말이다. 이것이 바로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의 기본 전제이다.
하지만 여기서 잠깐! 그렇다면 우리가 과연 미래 세대에게 차용증을 받았는지 묻고 싶다. 차용증은 돈, 물건 또는 시설을 빌려주며 여차하면 채무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미리 작성해두는 일종의 계약서다. 환경이 진정 미래 세대에게 빌려 쓰는 것이라면 우리 세대는 채무자이고 미래 세대는 채권자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미래 세대가 미성년자이거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지라 다들 어물쩍 넘어가는 것이다.
미국이나 캐나다는 아직 시간이 좀 있어 보인다. 그러나 국토 면적이 기껏해야 미국 켄터키주(州) 정도밖에 되지 않는 이 나라에서 개발 광풍을 멈추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 머지않아 삶터를 잃고 말 것이다. 진정 개발 문화를 걷어내고 생태 문화를 정착시키려면 나는 이제 모든 개발 사업에서 차용증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의 주인인 미래 세대와 마주 앉아 그들의 허락을 받아내야 한다.
차용증을 쓰려고 미래 세대 대표와 마주 앉은 개발론자들은 "우리가 이곳을 환경 친화적으로 잘 개발하면 여러분은 훨씬 더 풍요로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설득할 것이다. 어른들의 장황하고 모순투성이인 개발 논리를 듣던 미래 세대 대표는 참다못해 이렇게 말할 것이다. "됐시유. 냅둬유." 내가 3년이 넘도록 국립생태원에서 일하며 배운 충청도 대표 사투리다. "저희 것이니까 개발을 하든 보전을 하든 저희가 이담에 알아서 할게요." 차용증도 없이 남의 땅에서 함부로 나무를 베거나 물길을 바꾸는 일은 엄연한 불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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