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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525] 댕기바다오리의 떼죽음

바람아님 2019. 6. 12. 11:47
조선일보 2019.06.11. 03:1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사회생물학자가 되기 전 한때 나는 기생충 연구자였다. 알래스카 베링해 프리빌로프제도에 서식하는 바닷새의 체외 기생충 군집을 연구해 생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때 내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새는 같은 벼랑에서 한데 어울려 살던 세가락갈매기(kittiwake) 두 종과 바다오리(murre) 두 종이었다.

우리가 흔히 바다오리라고 뭉뚱그리는 새 중에는 극지방에 사는 새답지 않게 이례적으로 부리 색이 선명한 빨간색인 퍼핀(puffin)이라는 새가 있다. 극지방의 새들은 한결같이 흰색, 회색 또는 검은색으로 뒤덮여 있는데, 이 새는 그야말로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산다. 모두 세 종이 있는데 두만강 하구까지 내려와 사는 종을 우리말로 댕기바다오리(tufted puffin)라고 부른다.

최근 몇 달간 프리빌로프제도 바닷가에는 털갈이 중이던 댕기바다오리가 무려 9000마리나 쓸려와 널브러졌다. 과학자들은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추정한다. 베링해의 수온이 급격하게 치솟아 플랑크톤, 해양 무척추동물, 물고기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와해되며 상위 포식자인 댕기바다오리가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바닷새 중 왜 하필 댕기바다오리만 특별히 많이 죽는 걸까? 나는 혹시 그들의 특이한 섭식 행동 때문이 아닐까 의심해본다. 다른 바닷새들은 물고기를 한 번에 한 마리밖에 잡아 나를 수 없지만, 댕기바다오리는 한 부리에 여러 마리를 물고 귀가한다. 입천장에 뾰족한 가시가 안쪽 방향으로 나 있어 잡은 물고기를 부리 깊숙이 밀어 넣고 또 잡을 수 있다. 한 번에 물고기 62마리를 물어 나른 댕기바다오리가 현재 세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댕기바다오리 새끼들은 가방이나 호주머니도 없이 한꺼번에 물고기 여러 마리를 물어올 수 있는 어미 새의 독특한 능력 덕택에 그동안 배불리 먹고 살다가 갑자기 굶게 되자 특별히 힘들어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