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9.11.20 05:00
“그는 훌륭한 대통령은 될 수 있겠지만… 그렇지만….” (워싱턴포스트)
미국 대선 소식은 우리에게도 중요한 뉴스입니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마당이라, 이 남자의 등판이 더욱 흥미진진합니다.
[후후월드]
'품격 있는 억만장자' 대선 도전
중도층 끌어안으며 돌풍 될까
여성과 비백인 지지 받아야
올해 77세. 미디어그룹 블룸버그LP의 창립자이자 전 뉴욕 시장. 거물 중의 거물로 꼽히는 마이클 블룸버그 얘기죠.
‘트럼프보다 20배 부자’란 사실로 화제가 되는 이 남자, 어떤 인물이기에 미국 대선판이 술렁이는 걸까요.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20/065f46f3-947f-468b-85fc-33eb6af4a1d0.jpg)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AP=연합뉴스]
앞서 언급한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은 이렇게 요약됩니다.
“트럼프가 갖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그는 훌륭한 대통령은 될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민주당 후보가 되기 힘들 듯하다.”
품격 있는 억만장자의 탄생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20/e434d2e8-d7a6-41cf-9811-78a216a694b1.jpg)
내년 미국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보이는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자수성가, 갑부, 억만장자….
그를 다룬 기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입니다.
그의 순자산은 무려 530억 달러(약 62조원). 미국에서 9번째, 전세계에서 14번째 부호죠. 자신이 부자라고 늘 자랑하는 트럼프는 이런 블룸버그의 등판이 달갑지 않은지 “그는 실패할 것”이라 비꼽니다. 그러나 트럼프가 블룸버그보다 못한 건, 부의 규모보다는 부를 일군 방법입니다. 금수저 트럼프와 달리 블룸버그는 자수성가했거든요.
러시아(친가)ㆍ벨라루스(외가) 유대인 핏줄인 그는 존스홉킨스대 전자공학과와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증권사 살로먼브라더스에 입사해 탁월한 성과를 내기 시작합니다. 그곳에서 영원히 승승장구할 것 같던 그가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한 건 1981년, 사내정치에서 밀려나 잘렸을 때였죠.
그의 나이 서른아홉. 절망할 법한데 그는 이걸 기회로 삼습니다. 살로먼에서 일할 당시 금융 거래 분석을 일일이 수작업으로 확인하는 방법에 불만을 품고 있던 그는 전용 단말기와 회선을 통해 실시간으로 고급 정보를 제공하는 혁신적인 서비스를 선보입니다. 거대 미디어그룹 블룸버그의 시작이었죠.
‘연봉 1달러’ 뉴욕 시장의 자신감
![트럼프의 재선을 막겠다며 백악관 입성에 도전하는 마이클 블룸버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20/aabafb9d-b846-4a20-88f2-27a3c0704727.jpg)
트럼프의 재선을 막겠다며 백악관 입성에 도전하는 마이클 블룸버그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AP=연합뉴스]
막대한 부를 일군 그는 정치에 눈을 돌려 2001년 뉴욕 시장이 됐고 2005년, 2009년에 연이어 3선에 성공합니다. 연봉을 단 1달러만 받으며 공교육 개혁과 빈곤 퇴치에 힘을 썼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시장으로도 유명했죠. ‘보여주기 위한 쇼’란 욕을 먹기도 했지만 사실 부자란 사실보다 더욱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건 그의 이런 모습이었습니다.
‘부자의 품격’이라 해야 할까요. 그는 ‘기부왕’으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지난해에는 모교 존스홉킨스대에 무려 18억 달러(약 2조1000억원)를 쾌척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대학 기부 역사상 가장 큰 액수였죠. 블룸버그는 “나는 장학금 덕분에 대학을 졸업할 수 있었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룰 수 있었다”며 자신이 “기회의 평등을 위해 투자”하는 이유를 밝혔습니다.
민주당 소속이었다가 돌연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꿔 시장에 당선되고, 다시 무소속이었다 민주당으로 돌아온 그가 큰 무리 없이 대선주자로 나선 것도 정치적인 이슈에 있어 자신만의 ‘품격’을 지킨 덕입니다. 그는 낙태ㆍ총기 규제ㆍ기후변화ㆍ 이민자 문제 등에서 진보적이지만, 경제 이슈에선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친기업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요. 당적은 바꿔도 신념은 바꾸지 않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신뢰를 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그 때문에 그가 중도층 표를 흡수해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단 전망이 나오는 겁니다.
데이터를 믿는 남자, 대통령에 도전하다
“나는 데이터를 믿는다”는 게 그의 신조라고 측근들은 전하죠. 지난 2016년 대선 때 출마를 포기했던 것도 “자료를 분석해보니” 승산이 없었다고 밝혔을 정도입니다.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한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A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20/8e740a13-3e38-45d5-b8fe-99d0ee635270.jpg)
현재 민주당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한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AP=연합뉴스]
올 초만 해도 출마하지 않는다 했던 그가 돌연 입장을 바꾼 것도 철저한 분석을 한 결과란 게 미 언론의 설명입니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 조 바이든, 엘리자베스 워런, 버니 샌더스가 트럼프 대항마가 되기엔 역부족이란 평가를 했단 거죠.
그런데 이상합니다.
여론조사 결과 트럼프와 양자 대결에선 그가 앞서는 것으로 나오는데, 민주당 후보 중에선 ‘비호감 1위’를 차지했거든요. WP 등 주요 언론은 “민주당 후보가 되기 위해선 여성과 비백인 유권자의 지지가 필수인데 블룸버그는 여기에 약하다”고 진단합니다. 뉴욕타임스(NYT)는 “그는 물의를 일으키지 않는 언행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선 후보로선 더 많은 검증을 거쳐야 한다”고 설명하죠.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그가 뉴욕 시장 재직 시절 시행했던 ‘불심검문(Stop and Frisk) 강화’ 정책입니다. 아프리카계ㆍ히스패닉 남성이 주로 검문 대상이 됐기에 두고두고 욕을 먹었죠. 이를 의식한 것인지 그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생명을 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정책이었지만 죄가 없는 많은 사람도 검문을 당했다"며 "잘못했다"고 처음으로 사과했습니다. “77세 억만장자의 놀라운 양보”(NYT)란 평가가 나왔죠.
‘늙은 부자 백인 남성’은 왜 자꾸 백악관을 탐내나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20/a857dcda-c2c8-4556-83ca-395368e90eb0.jpg)
트럼프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기부자가 필요 없는”(폴리티코) 억만장자가 대선에 등판하면 금권선거가 될 수 있단 우려죠. 재벌 트럼프를 이기겠다며 나온 블룸버그 역시 ‘늙고 부자인 백인 남성’이란 점에 회의적인 이들도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룸버그는 뉴욕 시장 선거 때도 엄청난 사재를 턴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젊은 진보층 사이에서 인기가 높은 버니 샌더스는 블룸버그의 출격을 두고 "억만장자의 오만"이라며 "선거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란 일침을 놨습니다.
![진보적인 정책으로 젊은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버니 샌더스 [AFP=연합뉴스]](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1911/20/dc90ad2a-1f5c-4e31-8fa9-dcc23246fcc6.jpg)
진보적인 정책으로 젊은층의 지지를 받고 있는 버니 샌더스 [AFP=연합뉴스]
아직 그가 공식적으로 출마를 선언한 것은 아닙니다. 앨라배마주 민주당 프라이머리(예비선거) 관리위원회에 대선 경선 출마 서류를 제출했을 뿐이죠. 블룸버그의 존재가 돌풍이 될지 미풍에 그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있습니다.
어찌 됐든 그는 트럼프 재선 저지에 사활을 걸 거란 사실이죠. 그는 이미 “트럼프의 재선을 막기 위해서라면 돈은 얼마든지 쓸 수 있다”며 반(反) 트럼프 온라인 광고 영상에 1억 달러(약 1169억원)를 쏟아부었습니다.
올해 77세인 노장은 과연 꿈을 이룰 수 있을까요?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의 설명을 빌려봅니다.
“그는 이것이 자신에게 마지막 기회일 거란 걸 잘 알고 있다. 상황이 어찌 되든 그가 트럼프를 몰아내는 데 최소 5억 달러(약 5838억원)쯤은 쓸 거란 점은 확실하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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