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1.25 유민호 퍼시픽21 아시아담당디렉터)
대세는 '미식(美食)'이다. 해외여행에 나서는 한국인의 최대 관심사라고 한다.
미식 대국 프랑스로 향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하나 있다.
파리 지하철역 에티엔 마르셀(etienne marcel) 주변이다. 파리지앵에게는 주방 용품 집산지로 통한다.
1820년 창업한 '우딜린(edehillerin.fr)'을 비롯해 요리도구 대형 점포가 곳곳에 들어서 있다.
양적, 질적으로 엄청나다. 요리 세계의 디즈니랜드라고나 할까.
과자·케이크·빵 등을 만들 때 사용하는 수백 가지 소도구는 기본이다.
포크·나이프·칼·냄비의 경우 소재, 무게, 크기, 두께, 요리 종류에 맞춰 정밀하게 나뉘어 있다.
프라이팬도 생선, 고기, 채소, 요리 용도별로 전부 다르다. 계란 반숙 도구만도 수십 가지가 넘는다.
그냥 끓는 물에 넣어서 국자로 꺼내는 식이 아니다. 미쉐린 스타 요리사에게 어울릴 법한 주방용 신발도 인상 깊다.
미끄럼 방지에다 불에 강하고 발에 편한 신발들이 계절별로 전시돼 있다. 최고 3000유로짜리 신발도 있다.
에티엔 마르셀은 언제 어떻게 주방용품 성지가 된 것일까.
1789년 프랑스 혁명사의 주인공인 '생선가게 아줌마(Poissarde)'들이 배경에 있다. 베르사유 궁전에 도피해있던
국왕 루이 16세를 파리로 소환한, 이른바 '베르사유 행진'의 주역이 생선가게 아줌마다.
날이 선 생선칼을 앞세운 채 파리에서 베르사유까지 20㎞나 걸어가 국왕을 굴복시킨 여성 혁명군이다.
당시 에티엔 마르셀은 생선가게 집산지다. 230여년 전 생선가게가 요리 도구 점포로 진화한 셈이다.
프랑스는 명필일수록 붓을 가리는 나라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요리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밀라노에 있는 미쉐린 원 스타 레스토랑의 이탈리아인 요리사에게 물어봤다.
"이탈리아 요리는 전통 손끝 맛, 어머니의 사랑으로 집약된다. 프랑스는 과학이자 미학, 그리고 역사다.
맛으로 치자면 이탈리아 요리가 우위다. 고급문화로서, 멋으로서의 미식은 프랑스다.
주방에 들어선 형형색색 요리 도구들은 바로 그 증거다."
'人文,社會科學 > 時事·常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추픽추' 해발 2천400m 고산지대에 세운 이유는? (0) | 2019.11.29 |
---|---|
[윤희영의 News English] 등 돌리는 한국의 흙수저들 (0) | 2019.11.28 |
내일 영상 1도라면… 롱패딩 입어야 할까? (0) | 2019.11.24 |
[후후월드] '트럼프 20배 부자' 기부왕, 그런 블룸버그 왜 비호감 1위? (0) | 2019.11.23 |
[윤희영의 News English] "아니, 이런 아이러니한 경우가…" (0) | 2019.11.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