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9.11.30 태영호 전 북한 외교관)
[아무튼, 주말- 평양남자 태영호의 서울 탐구생활]
세계와 북한 격차 으뜸은 국제공항… 김정은 오면 인천공항을 보여줘야
일러스트=안병현
결국 김정은이 부산에서 열린 한-아세안 정상회담에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내게 김정은과 북한 고위층이 만약 한국에 오면 어디를 보여주는 게 좋을지 종종 물어본다.
그때마다 주저 없이 말하는 곳이 인천공항이다.
북한에서는 최고 권력을 누리는 간부조차 해외여행을 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으로 있을 때 북한 고위층 간부들이 영국에 오면 보여주는 곳이 있었다.
귀국할 때 일부러 히스로 공항에 빨리 나가 출국 절차를 마치고 공항 맨 위층에 있는 전망대로 데려갔다.
북한과 다른 나라의 격차를 보여주고 싶었다.
간부들은 전망대에서 비행기가 시간당 평균 35~40대 이착륙하는 모습을 보고는 무척 놀랐다.
하늘에서 새들이 줄 지어 내려오는 것처럼 저렇게 많은 비행기가 내려오는데 충돌하지 않는지 걱정한다.
관제탑에서 최첨단 레이더로 비행기 고도와 간격을 다 계산해 알려줄 것이라고 설명해 줘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들이다.
평양 공항의 국제선 정기 항로는 중국 베이징·선양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뿐이다.
여름 한 철 외국 관광객이 많아지면 국제선으로 상하이와 다롄 편, 국내선으로 삼지연(백두산), 갈마(원산·송도원·금강산),
신덕(함흥·흥남), 어랑(칠보산) 편 운항을 하지만 이착륙하는 비행기는 기껏해야 하루 평균 두세 대뿐이다.
온갖 인종으로 북적이는 해외여행자 모습도 간부에겐 낯선 풍경이다.
자본주의는 극소수 부자에겐 천국이지만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빈자에겐 지옥이라고 선전해온 이들 아닌가.
그들은 내게 저렇게 많은 사람이 어디서 돈이 생겨 해외여행을 하는지 물었다.
대부분 나라에서 아무 때나 여권을 신청하고 자유롭게 해외여행을 한다고는 차마 말해줄 수 없었다.
한번은 북한에서 김씨 일가와 최고위층 간부만 치료하는 평양 봉화병원 의사들이 스위스로 실습을 갔다.
돈이 없으니 런던을 거쳐 스위스 취리히로 가는 저가 항공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제일 싼 비행기표만 찾다 보니 베이징 여행사에선 런던 히스로 공항에 내려 런던 시티 공항으로 이동한 다음
취리히행으로 환승하는 비행기표를 구입했다.
비행기표에 분명히 도착 공항은 '런던 히스로', 출발 공항은 '런던 시티'라고 쓰여 있었지만 대표단은 이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다. 그들은 런던에 히스로 공항 외에도 시티, 루턴, 개트윅 등 국제공항이 몇 곳 더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북에서 내로라하는 최고 엘리트 의사들이었지만 해외여행엔 기초 상식도 없었던 것이다. 결국 다시 비행기표를 샀다.
2015년 북한 장애 청소년 예술단이 런던을 방문했는데 아코디언을 독주하는 시각장애 학생이 있었다.
그는 나에게 비행기는 야외에서 이륙하는 줄 알았는데 자기가 탄 베이징~런던 비행기는 실내에서 날아 올랐다고
자랑 삼아 얘기했다. 베이징 공항과 히스로 공항에서 탑승교(터미널과 항공기 출입구를 연결하는 탑승용 다리)를
이용해 실내로만 움직여 이런 착각을 한 것이었다.
한국에는 국제공항이 8곳이나 있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국제공항 수십 곳을 다녔지만 인천국제공항만큼 현대적이고
편리한 공항은 보지 못했다. 공항 대부분은 여행객이 누워 잠 자다가 비행기를 놓칠까 봐 일부러 의자에 팔걸이를
달아 놓았다고 하는데 인천공항에는 팔걸이가 없어 누워서 쉴 수 있다. 뭣보다 입출국 과정이 매우 편하다.
지난 10월 미국에 갈 때 뉴욕 케네디 공항을 이용했는데 입국 심사대에서만 2시간 반을 기다렸다.
일요일이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심사대 10개 중 2개만 열려 있었다.
너무 지쳐 반미주의자가 될 것 같았다.
김정은이 언젠가 답방한다면 그와 함께 온 북한 간부와 경호원이 꼭 인천공항을 봤으면 한다.
그들이 몇 십 초 간격으로 비행기가 착륙하고 각양각색 여행객이 붐비는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하는
모습을 그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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