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0.01.28. 00:43
양대 정당에 철퇴 내리고
정치판 세대교체 이루려면
중간지대 유권자 역할이 중요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진보주의 정당을,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보수주의 정당을 표방하는 것만큼 가소로운 코미디도 없다. 공정의 가치를 스스로 짓밟은 정당이 어떻게 진보일 수 있고, 명예의 가치를 새털처럼 여기는 정당이 보수일 수 있나. 진보와 보수를 참칭하는 정체불명의 사이비(似而非) 정당일 뿐이다. 굳이 규정하자면 두 당 모두 원리주의 정당이다. 자기편이 무조건 옳다고 우기며 상대편의 의문이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가 원리주의다.
지금 한국 사회는 양대 원리주의 세력의 극한대결로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다. 한쪽에 대통령 문재인이 하는 일이라면 닥치고 지지하는 친문(親文) 세력이 있다면 다른 쪽에는 그가 하는 일은 뭐든지 반대하는 반문(反文) 세력이 있다. 각각 진보와 보수라는 가짜 외피를 걸친 두 원리주의 세력의 대립과 갈등은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문명 충돌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것 다 하라고 부추기는 친문 세력은 적폐 청산에서 검찰 개혁, 소득주도 성장에서 탈(脫)원전, 친북탈미(親北脫美) 적 대외정책까지 문재인 정부가 하는 정책이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한다. 최소한의 합리적 의심이나 이견마저 스스로 용납하지 않는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세력이고, ‘문프(프레지던트 문재인)’를 사수하는 문재인 결사옹위 세력이다.
이들의 절대적 지지를 배경으로 문재인 정부의 편 가르기와 제 식구 감싸기는 갈수록 도를 더해가고 있다. 정권에 부담을 주는 수사를 담당한 검찰 간부들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일거에 다 쳐낸 데서 보듯이 안면 몰수와 후안무치가 지난 정부를 능가하는 수준이다. 욕하면서 닮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정권 초기에 보였던 겸허함이나 신중함은 사라지고, 대놓고 막가기로 작정한 모습이다.
반문 진영은 허구한 날 ‘문재인 정권 타도’만 외칠 뿐, 뭐 하나 건설적인 대안을 제시한 게 없다. 의회 정치와는 담을 쌓고, 장외투쟁이란 이름으로 ‘거리의 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 권위주의적이고 구태의연한 꼰대 정치 스타일도 그대로다. 세상의 변화와 무관하게 친미반북(親美反北)의 옛 노래만 불러제끼며 태극기와 성조기 부대를 기웃거리고 있다. 걸핏하면 삭발과 단식의 추억을 소환하는 낡은 수법도 여전하다.
총선이 다가오면서 두 원리주의 정당의 격돌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총선 결과에 정권 수호와 정권 타도가 달려 있다고 보는 민주당과 한국당 모두 필사적이다. 친문과 반문 세력이 각자 결집해 사생 결단의 대결을 벌일 것이 불 보듯 뻔하다. 두 달 보름 남짓 앞으로 다가온 총선 결과는 두 원리주의 세력의 싸움에 진저리를 치는 중간지대 유권자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 어림잡아 유권자 세 명 중 한 명이 여기에 속한다.
친문도 싫고, 반문도 싫은 사람들의 표심은 갈 곳을 몰라 허공을 떠돌고 있다. 그렇다고 방관하거나 포기해선 안 된다. 오히려 지금 상황을 정치판을 확 바꾸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한국 정치의 최대 적폐는 진보와 보수의 탈을 쓴 양대 정당 프레임이다. ‘너희들 표가 가본들 결국 우리 둘 중 하나 아니겠냐’는 그들의 자만심에 보란 듯이 철퇴를 내려야 한다.
정치권의 전면적인 세대교체도 이번 총선의 중요한 과제다. 민주화 이후 30년 넘게 한국 정치판을 주무르며 단물을 빨고 있는 586세대를 끌어내리고, 40대 이하의 젊은 세대를 정치권의 주류 세력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특히 20대 후반에서 30대 말까지의 밀레니얼 세대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스펙을 갖춘 세대다. 디지털 환경에서 자란 그들은 이념적 편향에서 비교적 자유롭고, 협업 문화에 익숙하다. 실용을 중시하는 글로벌 감각도 갖추고 있다. 경륜과 경험 부족을 걱정하지만, 공천권의 위력에 짓눌리고, 위계와 파벌에 찌든 비(非)민주적 정당 정치 경험까지 장점일 순 없다.
이번 총선을 통해 정치권의 양당 구조를 혁파하고, 세대교체를 실현하려면 그 어느 때보다 당보다 후보를 보고 투표를 할 필요가 있다. 당적의 유무나 소속 정당을 떠나 40세 이하 후보들을 눈여겨보고, 그들의 공약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유연한 사고와 실행력을 갖춘 젊은 후보들이 대거 국회에 진출해 초당적으로 활동할 때 후진적 정당 정치 구조를 타파할 수 있다. 정당에 관계없이 실력 있어 보이는 젊은 후보를 밀어주고, 그런 후보들을 일회용 장식품이 아닌 주축으로 내세운 정당에 표를 줘야 한다.
기대를 모았던 문재인 정부 역시 지난 정부와 다름없는 행태를 보이는 것은 승자독식의 권력 구조 탓이다. 한 표라도 더 얻은 쪽이 모든 걸 다 갖는 헌법 구조를 고치지 않는 한 집권 세력은 이익집단으로 변질할 수밖에 없다. 개헌을 통해 대화와 타협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이번 총선은 그 방향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다. 4·15 총선은 친문과 반문 원리주의 세력의 눈먼 이성을 일깨우고, 낡은 정치판을 갈아엎는 쾌거가 돼야 한다. 친문도, 반문도 아닌 당신의 자각과 젊은 층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가 절실하다.
배명복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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