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동쪽과 경복궁 사이. 작고 오래된 동네들이 모여 있는 서촌의 소박한 얼굴 뒤에는 조선 시대 풍류와 예술가들의 혼, 잊혔던 서울의 시간들이 고여 있다. 건축가 조한 교수와 잠들어 있던 서촌의 시간을 깨웠다.
길 위의 건축가 서촌에 반하다
조선 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이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다면, 서촌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권력을 곁에 두고도 권세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기 때문일까. 세종대왕이 나고 영조대왕이 자란 뿌리 깊은 곳이지만 묵묵히 몸을 낮춰 삶을 일궈온, 소박하고 아늑함이 느껴지는 동네다. 낡은 한옥과 골목들이 구불구불 미로를 이루는 이 오래된 동네에는 서울의 특별한 시간들이 잠들어 있다. 3년 전, 지금은 철거된 옥인시범아파트에서 열린 '옥인 콜렉티브' 전시를 통해 서촌과 첫 인연을 맺은 홍익대 건축학과 조한(45) 교수는 옥인동, 누하동, 통인동 등 서촌을 이루고 있는 작은 동네들을 휘돌아 인왕산 기슭 수성동계곡까지 이어지는 '옥류동천길'로 걸음을 안내했다. 옥류동천길이라, 서촌을 꽤 열심히 드나드는 기자에게도 낯선 이름이었다.
"옥류동천은 인왕산 수성동계곡에서 내려와 청계천으로 흘러들었던 하천이에요. 일제강점기 때 복개돼 지금은 구불구불한 골목길에서만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죠. 새 도로명 주소로 치면 '자하문 7길'이 되는데, 원래 있던 하천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을까 해서 '옥류동천'이라고 부르게 됐어요."
그의 말에 따르면 서촌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기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거 유형을 볼 수 있는 '주거학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란다. 공간과 건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길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잠들어 있는 보물들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여행이 시작됐다.
길 위에 새겨진 시간을 읽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 눈에 띄는 모양새의 은행 건물 왼쪽으로 난 길이 옥류동천길의 시작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193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다양한 시간을 담은 건물들이 붉은빛과 회색빛 행렬을 이룬다. 제각각 지어진 사연도 형태도 다르다. 길 초입, 식당과 옷가게, 상점들이 들어선 자그마한 한옥들은 대부분 1930년대에 지어진 '집장사집'들이다.
"1930년대는 서울이 급격히 팽창하며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들던 시기예요. 주거 공간이 부족해지자 집장사들이 스무 평 정도의 도시형 한옥을 대량으로 지어 팔았죠. 지금으로 치면 1960, 70년대에 대량 보급된 표준형 주택이나 1980, 90년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 같은 거예요."
1960, 70년대에 지어진 2층짜리 벽돌과 콘크리트 건물들, 1980년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과 상가 건물들, 1990년대 이후 지어진 근생 건물들까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몇십 년을 뛰어넘은 시간의 단면들이 펼쳐진다. 길을 걷던 그가 암호를 풀듯 건물들에 새겨진 시간의 무늬를 읽어낸다.
"1970, 80년대에는 타일 벽돌이 유행했고 90년대에는 화강암 건물이 대유행을 했어요. 벽돌도 70년대냐 80년대냐에 따라 달라요.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70년대에는 부숴서 만든 파벽돌이 많았어요. 반듯한 벽돌집들은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들이죠."
벽을 뜯어보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묘한 건물들도 많다. 사람이 사는 동안 수리하고 증축하며 시간들이 더해진 까닭이다.
동네 주민들을 위한 문화 공간으로 쓰이다 지금은 수리 중에 있는 천재 문학 작가 이상의 집, 생긴 지 60년이 넘은 오래된 책방 대오서점을 지나면 정자가 있는 작은 광장이 열린다. 서촌은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는 마을버스와 따르릉 자전거 소리, 어디선가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기억나지 않는 시간 어디쯤인가를 거닐던 발걸음을 순식간에 현재로 끌어다 놓는다.
문인과 화가 모여들었던 예술가들의 터
광장을 지나서는 옥인길이 시작된다. 몇 해 전부터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모여들기 시작한 공방과 잡화점, 카페들이 이제 꽤 많은 수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서촌 문화를 홍보하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옥인상점', 빈티지 숍 '동양백화점',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선술 바 '바르셀로나' 등 예술적 감각이 엿보이는 공간들이 눈에 띈다. 서촌은 조선 시대 중인들이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던 곳이었다. 겸재 정선의 명작 '인왕제색도'가 탄생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당시 전문 지식인층이었던 중인들을 비롯해 풍류를 즐기는 시문학 동인들이 인왕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잘나가는 사대부들도 앞다퉈 별장을 지었다. 근대기에 와서는 소설가 이상과 현대 동양화단의 거목 박노수, 한국화가 이상범, 시인 윤동주, 화가 이중섭 등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 적을 두고 예술혼을 불태웠다.
이상의 집터를 비롯해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1호로 남아 있는 박노수 가옥, 윤동주 하숙집 터 등 예술가들의 흔적은 여전히 서촌 곳곳에 남아 있다. 그중 박노수 가옥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가 없다. 한식과 중식, 일식의 건축양식이 혼재한 독특한 형태의 박노수 가옥은 언뜻 봐도 화려함과 이국적인 정취가 풍기는 집이다. 친일파 윤덕영이 딸과 사위를 위해 지어준 집으로 박노수 화백이 1972년부터 소유하고 있다. 그동안 개인 소유의 집이라 일반인은 들어가볼 수 없었는데, 얼마 전 종로구 최초의 구립미술관으로 개장돼 둘러볼 수 있게 됐다. 박노수 가옥을 나와 서서히 오르막을 타던 길 위에 빨간색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낸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는 티베트박물관 건물이다.
"당시 전깃줄 공장 인부들이 살던 기숙사였다고 해요. 이 건물이 무척 재미있는 게 1층 안쪽 벽이 암반으로 돼 있어요. 인왕산 바위예요. 집을 지을 때 자연이 제공하는 기초를 그대로 사용한 거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상당히 많아요. 친일파 윤덕영이 살던 벽수산장의 유물들도 곳곳에 남아 있어요. 벽수산장 대문에 있던 성물은 이제 다세대주택 주차장 입구를 지키고 있고, 우아했던 아치는 어느 집의 담장이 됐어요. 당시의 영화가 지금은 누군가의 담장이 되고, 대문이 되고, 일상이 돼 공존하고 있는 거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길
옥류동천길은 인왕산 기슭, 수정동계곡 입구에 다다르면서 끝이 난다. 지난 2011년, 옥인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겸재 정선의 그림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수성동계곡의 모습이 복원됐다. 원래는 생태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었는데 아파트 철거 중에 계곡을 복원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계곡 입구에서는 현재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보존된 돌다리인 기린교를 만날 수 있다. 계곡 옆쪽에는 이제는 사라진 옥인아파트의 콘크리트 벽 일부가 남아 있다. 그렇게 서촌에는 이제 사라져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시간들이 고여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걷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서촌이 만들어져요. 이곳에서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볼 수 있는 시간의 단면이 달라지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곳,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그게 바로 서촌 옥류동천길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Tip
서촌 옥류동천길 (예상 소요 시간 2시간)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 우리은행 옆길 -대오서점-통인시장 입구 - 옥인상점 - 박노수 가옥 -티베트박물관 - 수성동계곡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조선 시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이 사대부 집권 세력의 거주지였다면, 서촌은 역관이나 의관 등 전문직인 중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권력을 곁에 두고도 권세와는 거리가 먼 곳이었기 때문일까. 세종대왕이 나고 영조대왕이 자란 뿌리 깊은 곳이지만 묵묵히 몸을 낮춰 삶을 일궈온, 소박하고 아늑함이 느껴지는 동네다. 낡은 한옥과 골목들이 구불구불 미로를 이루는 이 오래된 동네에는 서울의 특별한 시간들이 잠들어 있다. 3년 전, 지금은 철거된 옥인시범아파트에서 열린 '옥인 콜렉티브' 전시를 통해 서촌과 첫 인연을 맺은 홍익대 건축학과 조한(45) 교수는 옥인동, 누하동, 통인동 등 서촌을 이루고 있는 작은 동네들을 휘돌아 인왕산 기슭 수성동계곡까지 이어지는 '옥류동천길'로 걸음을 안내했다. 옥류동천길이라, 서촌을 꽤 열심히 드나드는 기자에게도 낯선 이름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서촌은 서울 시내에서 보기 드물게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 산업화 시기를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주거 유형을 볼 수 있는 '주거학의 보물 창고' 같은 곳이란다. 공간과 건물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이 길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고. 잠들어 있는 보물들을 찾아 한 걸음 한 걸음, 여행이 시작됐다.
길 위에 새겨진 시간을 읽다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로 나와 직진, 눈에 띄는 모양새의 은행 건물 왼쪽으로 난 길이 옥류동천길의 시작이다. 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1930년대부터 90년대까지, 다양한 시간을 담은 건물들이 붉은빛과 회색빛 행렬을 이룬다. 제각각 지어진 사연도 형태도 다르다. 길 초입, 식당과 옷가게, 상점들이 들어선 자그마한 한옥들은 대부분 1930년대에 지어진 '집장사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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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 70년대에 지어진 2층짜리 벽돌과 콘크리트 건물들, 1980년대에 지어진 다세대주택과 상가 건물들, 1990년대 이후 지어진 근생 건물들까지,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몇십 년을 뛰어넘은 시간의 단면들이 펼쳐진다. 길을 걷던 그가 암호를 풀듯 건물들에 새겨진 시간의 무늬를 읽어낸다.
"1970, 80년대에는 타일 벽돌이 유행했고 90년대에는 화강암 건물이 대유행을 했어요. 벽돌도 70년대냐 80년대냐에 따라 달라요.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70년대에는 부숴서 만든 파벽돌이 많았어요. 반듯한 벽돌집들은 80년대 후반에 지어진 것들이죠."
벽을 뜯어보기 전에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묘한 건물들도 많다. 사람이 사는 동안 수리하고 증축하며 시간들이 더해진 까닭이다.
문인과 화가 모여들었던 예술가들의 터
광장을 지나서는 옥인길이 시작된다. 몇 해 전부터 도시의 번잡함을 피해 모여들기 시작한 공방과 잡화점, 카페들이 이제 꽤 많은 수를 이루고 있다. 다양한 서촌 문화를 홍보하고 관련 상품을 판매하는 '옥인상점', 빈티지 숍 '동양백화점', 이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선술 바 '바르셀로나' 등 예술적 감각이 엿보이는 공간들이 눈에 띈다. 서촌은 조선 시대 중인들이 모여 시를 짓고 그림을 그리던 곳이었다. 겸재 정선의 명작 '인왕제색도'가 탄생한 곳도 바로 이곳이다. 당시 전문 지식인층이었던 중인들을 비롯해 풍류를 즐기는 시문학 동인들이 인왕산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했고, 잘나가는 사대부들도 앞다퉈 별장을 지었다. 근대기에 와서는 소설가 이상과 현대 동양화단의 거목 박노수, 한국화가 이상범, 시인 윤동주, 화가 이중섭 등 문인과 화가들이 이곳에 적을 두고 예술혼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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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전깃줄 공장 인부들이 살던 기숙사였다고 해요. 이 건물이 무척 재미있는 게 1층 안쪽 벽이 암반으로 돼 있어요. 인왕산 바위예요. 집을 지을 때 자연이 제공하는 기초를 그대로 사용한 거죠.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지어진 집들이 상당히 많아요. 친일파 윤덕영이 살던 벽수산장의 유물들도 곳곳에 남아 있어요. 벽수산장 대문에 있던 성물은 이제 다세대주택 주차장 입구를 지키고 있고, 우아했던 아치는 어느 집의 담장이 됐어요. 당시의 영화가 지금은 누군가의 담장이 되고, 대문이 되고, 일상이 돼 공존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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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동천길은 인왕산 기슭, 수정동계곡 입구에 다다르면서 끝이 난다. 지난 2011년, 옥인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겸재 정선의 그림을 바탕으로 조선 시대 수성동계곡의 모습이 복원됐다. 원래는 생태 공원을 조성할 예정이었는데 아파트 철거 중에 계곡을 복원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꾼 것이다. 계곡 입구에서는 현재 도성 내에서 유일하게 원위치에 보존된 돌다리인 기린교를 만날 수 있다. 계곡 옆쪽에는 이제는 사라진 옥인아파트의 콘크리트 벽 일부가 남아 있다. 그렇게 서촌에는 이제 사라져 없어진 줄로만 알았던 시간들이 고여 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걷는 사람에 따라 전혀 다른 서촌이 만들어져요. 이곳에서는 생각을 조금만 달리해도 볼 수 있는 시간의 단면이 달라지죠. 시간을 내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는 곳,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곳, 그게 바로 서촌 옥류동천길의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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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 옥류동천길 (예상 소요 시간 2시간)
3호선 경복궁역 2번 출구 - 우리은행 옆길 -대오서점-통인시장 입구 - 옥인상점 - 박노수 가옥 -티베트박물관 - 수성동계곡
<■글 / 노정연 기자 ■사진 / 조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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