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대경(羅大經)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기도 하네(山靜似太古 日長如小年)
내 집은 깊은 산속에 있어 매년 봄이 가고 여름이 올 때면(余家深山之中 每春夏之交)
푸른 이끼 섬돌에 차오르고 떨어진 꽃이 길바닥에 가득하네(蒼蘚盈堦 落花滿徑)
문에는 두드리는 사람 없고 솔 그림자 들쑥날쑥한데(門無剝啄 松影參差)
새 소리 위아래로 오르내릴 제 낮잠이 막 깊이 드네(禽聲上下 午睡初足)
돌아가 산골 샘물 긷고 솔가지 주워와 쓴 차를 끓여 마시네(旋汲山泉 拾松枝 煮苦茗啜之)
▲ 김희성 ‘산정일장’. 종이에 연한 색. 29.5×37.2cm. 간송미술관 |
오랫동안 귀농을 꿈꾸던 친구가 드디어 사표를 던졌다. 퇴직금으로 강원도에 작은 집을 장만한 그는 인생 말년을 농사를 지으며 살겠다고 했다. 산새들이 극성스럽게 고성을 질러도 짜증스럽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친구의 얼굴은 긴 세월 우려낸 결심을 실천한 사람의 편안함이 담겨 있었다. “정말 귀농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하면서 한없이 부러워하는 나를 뒤로 하고 그 친구는 강원도로 떠났다.
이제 그는 건조하게 울려대는 알람 대신 부드러운 침묵 속에서 잠을 깰 테고, 창가에 심어둔 대나무들이 뻣뻣해진 근육을 풀 때쯤 잠자리에 들 것이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며 달력을 넘기는 대신 푸른 이끼가 섬돌에 차오르는 모습을 보며 봄이 가고 여름이 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구름의 냄새를 맡고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사노라면 그에게 운명은 더 이상 납처럼 무겁지 않고, 거만하게 혼을 짓누르던 걱정 따위는 맥을 못 추고 물러날 것이다. 먼 산골이라 찾아오는 벗이 없어 적적할 때도 있겠지만 일하다 지치면 낮잠을 자고, 해질녘이면 마루에 앉아 노을을 고봉으로 담은 차를 마시며 시집을 펼칠 것이다. 갈 봄 여름 없이 저만치 홀로 피고 지는 꽃을 보며 사노라면 앞산은 태고처럼 고요하고, 아침 해는 소년의 앞날처럼 길기만 할 것이다. 산에 사는(山居) 사람의 고즈넉함이 그의 삶을 온기스럽게 데워줄 것이다. 그는 사람답게 살 것이다.
나는 이런 집에 살 거야
친구는 늠름한 산을 배경으로 아담한 살림집을 지었다. 몇 년 전부터 강원도 산골을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더니 특별히 언덕 위에 소나무 세 그루가 서 있는 터전을 골라 이삿짐을 풀었다. 넘치는 책을 주체할 수 없었던 친구는 초옥(草屋)을 두 채 지어 살림집과 서재를 분리했다. 전나무와 생강나무와 두릅나무 사이로 조심스레 기둥을 세우면서 도연명이 부럽지 않도록 복숭아나무를 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문은 위압스러운 철문 대신 싸리문을 세워 바깥과 안의 경계로 삼았다. 할 일 없는 날에 낮잠을 즐길 때면 천상의 학이 내려와 춤을 출 수 있도록 마당은 넓게 비워 두었다. 바람 부는 봄밤이면 복숭아꽃 아래 짜 넣은 편상에서 곡주를 마시며 인생을 음미할 것이다. 그때 싸리문 밖 버드나무는 귀거래한 주인을 위해 무희처럼 춤을 추리니 한 나라의 제왕인들 이보다 더 즐거운 말년을 보낼 수 있으랴. 삶이 곧 꿈이고 꿈이 곧 현실이라 꿈과 현실이 사이좋게 화해한 삶 속에서 집주인은 운명과 격한 전투를 벌이지 않고서도 구절양장 우수 어린 생애를 평화롭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꿈을 꾸듯 강원도로 떠난 친구가 살아갈 산촌 생활 모습을 김희성(金喜誠·1710년대~1763년 이후)이 그렸다. 제시(題詩)로는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나대경(羅大經·1196~1252)의 시구절을 적었다.(문장이 길어서 뒷부분은 생략했다.) 위의 시구절은 흔히 앞 두 글자씩만 취해 ‘산정일장(山靜日長)’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화가의 사랑을 받았는데, 출처는 중국 남송(南宋) 때의 학자인 나대경의 산문집 ‘학림옥로(鶴林玉露)’ 중 산속 생활의 즐거움을 읊은 ‘산거(山居)’ 편에 나온 문장이다. ‘학림옥로’는 나대경의 호 학림(鶴林)을 따서 지은 책으로 모두 18권이며 주희(朱熹), 구양수(歐陽修), 소식(蘇軾) 등의 문인과 학자의 어록, 시문에 관한 논평이 적혀 있다.
‘산정일장’을 그린 김희성은 화원(畵員) 화가로 호를 불염재(不染齋), 불염자(不染子)라 했는데 김희겸(金喜謙)이라는 이명(異名)을 썼다. 그의 아들 김후신(金厚臣)도 화원화가였다. 겸재(謙齋) 정선(鄭敾·1676~1759)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운 까닭에 그의 그림 속에는 스승의 화풍이 짙게 드리워져 있는데 ‘산정일장’도 마찬가지다. ‘산정일장’은 ‘학림옥로’의 내용을 모두 여섯 폭으로 그린 작품 중 한 폭으로, 성리학적 이상을 실천하며 사는 은자(隱者)의 삶을 담은 시리즈라 할 수 있다. ‘학림옥로’를 제재로 그린 작가로는 김희성 외에도 심사정(沈師正·1707~1769), 정수영(鄭遂榮·1743~1831), 이인문(李寅文·1745 ~1821), 김홍도(金弘道·1745~?), 오순(吳珣·?), 이재관(李在寬·1783~1838), 허련(許鍊·1809~1892)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때로 ‘학림옥로’의 내용을 여러 폭의 병풍으로 그릴 때도 있었고 한 폭에 전체 내용을 압축해서 그릴 때도 있었다. 어느 경우든 모든 그림 속에는 나대경의 글을 빙자한 화가의 꿈이 담겼다.
그의 시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그런데 나대경이 쓴 ‘산거’의 첫 문장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山靜似太古 日長如少年)’라는 문장은 원래 나대경의 글이 아니었다. 당경(唐庚·1071~1121)이 쓴 ‘술에 취해 자다(醉眠)’라는 시의 첫 번째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1606년 조선에 사신으로 왔던 주지번(朱之蕃)에 의해 전래된 ‘천고최성첩(千古最盛帖)’ 중 아산 선문대박물관에 소장된 임모본 ‘학림옥로도’에서 이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림 옆에는 ‘나대경이 말하기를 당경의 시 산은 태고인 양 고요하고 해는 소년처럼 길다(羅鶴林曰唐子西詩云山靜似太古日長如少年…)’라고 적혀 있어(‘子西’는 당경의 字) 나대경이 당경의 시를 인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한동안 학계에서는 이 글이 당경의 시인지 나대경의 산문인지 규명되지 않아 설전을 펼친 적도 있었다. 나대경이 선택한 당경의 시가 나대경의 시로 오인받을 만큼 다른 시구절과 조화를 잘 이루었음을 말해준다.
김홍도의 ‘삼공불환도’에 두 개의 서로 다른 글이 한 화면에 담겨 있다면, 김희성의 ‘산정일장도’에는 ‘시 속의 시’가 담겨 있다. 학문 간의 벽을 허물자는 통섭과 융합이 화두가 된 요즘, 그런 운동을 이미 300여년 전에 실천한 조선시대 선배들의 작품을 감상해 보는 것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것이다.
조정육 홍익대 한국회화사 석사, 동국대 박사 수료. 성신여대 대학원, 동국대 대학원 강의. 저서 ‘그림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거침없는 그리움’ ‘꿈에 본 복숭아꽃 비바람에 떨어져’ ‘조선이 낳은 그림 천재들’ ‘우리나라 대표 그림’ ‘그림공부, 사람공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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