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23. 2. 3. 03:02 수정 2023. 2. 3. 03:18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일본은 미국과 안전보장조약을 맺었다. 현재 맹위를 떨치고 있는 미일동맹, 바로 그 조약이다. 불과 6년 전까지 사생결단으로 태평양 전역에서 싸웠던 두 나라, 승전국이 패전국을 점령하여 지배하에 둔 관계였던 두 나라가 갑자기 군사동맹이 된 것이다. 소련이 팽창하고 중국이 공산화되고, 무엇보다 미국이 일본을 점령한 동안에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일본의 전략적 가치가 급격히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 |
경제 개발 올인… ‘요시다 독트린’
얼마 전 일본 정부는 방위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로 늘리고, 상대방의 공격을 단념시키는 ‘반격 능력 확보’를 선언해 일본 우파의 오랜 숙원이었던 자위대 ‘국군화’에 코앞까지 다가섰다. 이렇게 하는 구실 중 하나가 북한의 안보 위협이니,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은 일본 우파에는 천우신조(天佑神助) 같은 존재다.
‘요시다 독트린’으로 불리는 국가 노선을 확립하여 전후 일본을 회생시켰다. 외교는 철저히 친서방 노선을 취하고, 국방은 미국에 맡겨 군사력을 갖지 않으며, 일본은 오로지 경제발전에만 매진하는 방침이었다. 국제정세의 변화로 오히려 미국이 일본 재무장을 주장했으나, 요시다는 이에 저항하여 ‘비무장-경제개발’ 노선을 관철했다.
5회 역임, 역대 최다 집권 총리
도와주며 실리 챙긴 ‘맥아더 절친’
(중략)
2년의 시차를 두고 미일동맹, 한미동맹이 체결되었는데, 미일동맹이 요시다와 맥아더, 나아가 미국 정부 간에 형성된 신뢰감으로 성사되었다면, 한미동맹은 이승만의 북진통일 협박 등 훨씬 험한 과정을 통해 이뤄졌다. 한국전쟁이라는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쳤던 이승만에 비하면, 요시다는 그가 좋아하는 시가(cigar)를 즐길 여유가 훨씬 많았다.
https://v.daum.net/v/20230203030237752
맥아더 ‘수족’ 넘어 ‘절친’된 요시다… 戰後 일본 회생시켜[박훈 한국인이 본 20세기 일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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