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23. 6. 9. 00:49 수정 2023. 6. 9. 05:54
「 공산정권에선 제대로 교육 못해
1947년 여름 가족과 남쪽으로
생사 넘나든 나룻배 탈출 작전
목숨 이상으로 귀한 자유 실감
」
1947년의 일이다. 해방 2년 후였기 때문에 북녘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공산정권 밑에서는 교육다운 교육이 불가능했기에 내가 추진해온 중고등교육을 단념하고 월남하기로 했다.
늦은 오후에 간신히 해주역에 도착했다. 가까이 있는 한 여관을 찾았다. 여관주인이 우리를 깊숙한 안방으로 안내했다. “안심해도 됩니다.” 탈북인으로 직감한 모양이다.
우리 배를 본 경비원이 호루라기를 불었다. 그러나 배는 이미 바다에 들어선 뒤였다. 마치 작은 배들의 전쟁터 같았다.
얼마 후 사공이 “이제는 안심해도 된다”라고 했다. 한 사람이 “자유 만세!”를 선창했다. 나도 눈물을 닦았다. 새벽 시간이었다. 바다 남쪽 해안에는 여기저기 모닥불이 피어있었다. 서북청년단원들이 월남한 사람들을 위해 새벽 한기를 피하도록 준비한 것이다.
https://v.daum.net/v/20230609004959103
[김형석의 100년 산책] 자유를 찾아서…나도 탈북자의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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