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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265] 새로운 계산법

바람아님 2014. 5. 13. 07:49

(출처-조선일보 2014.05.13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오랜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서울대로 돌아온 이듬해 나는 정부로부터 엄청난 금의환향 선물을 받았다. 1995년 김영삼 정부는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계획을 공표했다. 
미국에서 산 15년을 송두리째 자연사박물관에서 보낸 나로서는 '정부가 나의 귀환을 손꼽아 기다렸나'착각할 지경이었다. 그래서 앞뒤 가릴 것 없이 뛰어든 건립추진위원회 일이 어언 20년이 돼간다.

김영삼 정부는 발표만 하고 떠나갔고 이어진 세 정부의 시큰둥한 태도에 기대에 부풀었던 내 가슴은 새카맣게 타버렸다. 번번이 한국개발원(KDI)의 예비 타당성 조사가 문제였다. 자연사박물관 건립은 경제성이 부족한 사업이라는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입장료 대비 운영비만 계산하지 말고 어느 날 한 아이가 박물관 로비로 들어서며 거대한 공룡 화석에 감동받아 훗날 세계적인 고생물학자가 되어 대한민국의 품격을 올려주는 경제성도 계산해달라고 호소했다. 경제학은 아직 이런 덧셈 계산을 할 줄 모른다.

계산을 못 하기는 뺄셈도 마찬가지다. 그저 오늘, 이달, 금년 수익이나 계산할 줄 알았지 어쩌다 사고라도 나면 애써 벌었던 걸 한 번에 다 날릴 수 있다는 걸 계산에 넣지 않는다. 설령 계산했다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경제적 손익 계산일 뿐 고귀한 생명을 잃는 것에 대해서는 아예 계산법조차 모른다. 청해진해운은 가장 악랄한 사례일 뿐 우리 사회 거의 모든 조직은 한결같이 성과 위주의 대차대조표만 작성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다른 손익계산서를 주문하고 있건만.

경제 부흥이라는 미명 아래 이 땅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국토 개발 사업 역시 그것이 가져올 경제성만 강조할 뿐 그로 인한 국민 행복의 손실은 계산할 줄 모른다. 더 많은 승객과 화물을 싣기 위한 구조 변경에 눈이 어둡더니 침몰 가능성에는 아예 눈을 감아버린 것처럼. 이제는 예비 타당성 조사에 경제성(economic feasibility)과 더불어 생태성(ecological integrity) 계산이 포함돼야 한다. 안전 사회에는 새로운 계산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