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2.07.02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지난 6월 29일자 과학저널 사이언스(Science)에는 도자기의 역사를 거의 2만년 전으로 밀어올리는
논문이 실렸다. 하버드대 인류학과의 바요세프(Ofer Bar-Yosef) 교수가 이끄는 미국 연구진과 중국
베이징대 연구진은 중국 지앙시 시안렌동 동굴에서 발견한 도자기 조각들이 지금으로부터
1만9000~2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는 종전의 도자기 발견 연대를 적어도 2000~3000년 앞당긴 결과이다.
고고학자들은 그동안 우리 인류가 농경을 시작하면서 도자기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설명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랫동안 최초의 도자기는 지금의 이란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약 9000년 전
진흙으로 빚은 다음 햇볕에 말려 단단하게 만들어 사용한 토기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다가 1960년대
중반 뜻밖에도 일본에서 기원전 1만50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즐문토기가 발견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하라사막 이남에 살던 아프리카 사람들도 토기를 만들어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발견들로 인해 농경과 도자기의 관계는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토기를 사용하던 일본과 아프리카 사람들은 모두 농경이 아니라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사이언스 논문은 도자기의 사용과 수렵채집 생활의
관계를 더욱 공고하게 해주었다.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 인류가 농경을 시작한 때보다 무려 1만년 전에 만들어진 도자기임이
밝혀진 것이다.
바요세프 교수와 하버드대 인류학과에 함께 있다가 몇 년 전 '인간진화생물학과'라는 신설 학과를 만들어 독립한 영장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은 그의 근저 '요리 본능'에서 단순히 불의 소유가 아니라 불을 이용한 요리의 발명이
우리를 진정한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주었다는 주장을 펼친다. 불의 발견이 요리에 필수적이었지만 도자기의 발명이 수반되지 않았다면 우리의 요리는 기껏해야 꼬치구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도자기가 그저 식량을 보관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요리를 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었다. 이번에 발견된 몇몇 도자기 조각들에는 불에 그슬린 흔적이 역력했다고 한다. 빙하기 사람들도 아마 곰국을 즐겨 먹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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