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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65) 총알개미와 독침고통지수

바람아님 2014. 5. 7. 09:36

(출처-조선일보 2012.06.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지난해 우리말로 번역되어 나온 '꿀벌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책에는 1984년 미국 애리조나 벌 연구소의 저스틴 슈미트 박사가 고안한 고통지수에 관한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독침이나 독샘은 거미, 전갈, 해파리, 노랑가오리, 뱀 등 다양한 동물들에서 발견되지만, 슈미트 박사가 작성한 지수는 곤충에 한정된 것이었다. 지구상에는 현재 100만 종의 곤충이 알려져 있지만 슈미트 박사가 만든 목록의 상위 10위는 모두 벌, 말벌, 개미 등 벌목(Order Hymenoptera) 곤충들이다. 이들의 엄청난 생태적 성공과 무관하지 않은 관찰이라고 생각한다.

독침을 지닌 곤충이라면 사람들은 우선 벌을 떠올리지만 슈미트 목록의 1등은 뜻밖에도 개미가 차지했다. 파라포네라(Paraponera) 속(屬)의 총알개미(bullet ant)의 독침에 쏘였을 때 느끼는 고통을 그는 발뒤꿈치에 긴 녹슨 못이 박힌 채 타오르는 숯불 위를 걷는 것과 같다고 표현했다. 뭐 그리 길게 주절거릴 것도 없다. 나는 기절했다. 1980년대 파나마 열대우림에서 연구하던 어느 날 산등성이에서 계곡으로 내려가던 중 나는 홀연 왼쪽 팔뚝에 화끈거리는 따끔함을 느꼈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거머쥔 나뭇가지에 총알개미들이 오르내리는 걸 미처 몰랐다. '녹슨 못이 박히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지만 팔뚝을 문지르며 계속 산을 내려가는데 눈앞의 풍광이 심하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신속하고 현명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곳에서 쓰러지면 자칫 계곡으로 굴러 떨어져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나는 되돌아 산을 기어올랐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때마침 연구를 마치고 하산하던 미국 친구가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왜 숲 속에 누워 있느냐고 묻길래 개미에게 쏘였다고 했더니 그는 피식 웃으며 사라졌다.

슈미트의 목록은 10위를 차지한 꼬마꽃벌(sweat bee)을 제외하곤 모두 개미와 말벌로 채워져 있다. 우리 주변에는 가끔 꿀벌에 쏘여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꿀벌은 말벌에 비해 한 마리가 지닌 독성은 그리 강하지 않지만 쏘인 곳에서 어영부영하다 보면 졸지에 수백, 수천 마리가 몰려올 수 있다. 한낱 벌레라고 우습게 보지 말고 체면불구 줄행랑이 최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