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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166] 과학의 조건

바람아님 2014. 5. 9. 08:57

(출처-조선일보 2012.06.18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1982년 미국 아칸소(Arkansas)주에서는 진화학을 학교에서 강의해서는 안 된다는 근본주의 기독교인들의 주장 때문에 법정 논쟁이 벌어졌다. 

당시 아칸소주 법원의 윌리엄 오버턴(William Overton) 판사는 이 문제에 대한 판결을 위해 

각계의 전문가에게 자연과학의 본질에 대한 폭넓은 자문을 했고 일부 과학자들은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도 했다. 그런 신중한 과정을 거치며 작성한 판결문에서 그는 자연과학의 특성을 다섯 가지로 

설명했다. 그가 내린 자연과학에 대한 정의는 그 어느 자연과학자의 정의보다 훨씬 간결하고 정곡을 찌른다.


그는 자연과학은 우선 "자연법칙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자연과학은 우리 인간이 만들어낸 법규나 종교적인 강령이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는 자연의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모든 것을 자연법칙에 따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실제 세계에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모든 것을 하느님이 창조했다는 주장은 검증이 불가능하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했다는 사실은 다시 실험해볼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느님께 실험을 하려고 하니 언제 오셔서 다시 한번 모든 걸 창조해 주십사 부탁할 수 있는가?

넷째로 그는 자연과학의 "연구 결과는 언제나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고 더 탁월한 실험 방법이 나오면 언제나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어야 자연과학으로서 힘을 얻는다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의 학설이나 믿음을 반증을 통해 뒤집을 수 있어야 자연과학이다. 

이를 정리하면 자연법칙에 따라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하고 실험 결과에 따라 반박할 수 있어야 자연과학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가장 민주적인 인간 활동이다. 

과학자라면 누구든 새로운 증거를 찾아내고 그를 바탕으로 기존의 질서에 도전할 수 있다. 

과학계의 권위는 오로지 증거와 이론의 탄탄함으로 확립된다. 

과학의 권위에 도전하는 일은 전혀 불경스러운 일이 아니다. 

과학자들에게는 논쟁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인데 밖에서 보기에는 논쟁이 일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마치 오류를 인정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과학에서 침묵은 결코 금이 아니다. 억압된 침묵은 더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