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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192] '인터넷의 역설'과 책

바람아님 2014. 7. 3. 10:03

(출처-조선일보 2012.12.17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올 초에 번역된 '오! 이것이 아이디어다'라는 책에는 
우리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위대한 아이디어 50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수천 명의 영국인들이 설문에 참여하여 작성된 이 목록에는 음악(4위), 불(5위), 민주주의(14위), 
전기(22위), 자본주의(42위) 등 쟁쟁한 아이디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런데 피임은 당당히 3위에 올랐건만 결혼은 겨우 50위로 아슬아슬하게 턱걸이했다.

가장 큰 격세지감은 지상 최고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문자를 제치고 인터넷이 1위에 등극한 것이다. 
문자가 없다면 인터넷은 소용이 없을 텐데.

십여 년 전 일본에 갔을 때 도쿄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이 제가끔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며 무척 
부러웠던 기억이 난다. 
우리도 지하철이 점차 편리해지며 한때 제법 많은 사람이 책을 펼치기 시작했었다. 
잠시 그러는가 싶더니 웬걸, 지하철 독서가 미처 뿌리를 내리기 전에 그만 스마트폰이 등장해버렸다. 
요즘 지하철 안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열 명 중 족히 예닐곱은 모두 스마트폰에 얼굴을 박고 있다. 
스마트폰은 황소개구리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우리나라 출판문화 생태계를 초토화시켰다.

인터넷의 등장과 함께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 예측하는 미래학자들이 있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터넷은 이른바 '지식 부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이롭지만 정보의 진위나 가치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지식 빈자'에게는 
오히려 해가 되기 쉽다. 움베르토 에코는 이를 두고 '인터넷의 역설'이라 일컫는다. 
세상은 점점 더 스마트해져 가는데 정작 사람들은 점점 덜 스마트해지는 것 같다. 
스마트폰을 깜빡 집에 두고 나오면 자기 집 전화번호도 기억하지 못하고, 어느덧 내비게이션 없이는 여행을 떠날 엄두도 못 낸다.
필요한 정보를 찾는답시고 인터넷 바다에서 파도타기(internet surfing)를 하느라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보면 
지식을 얻기 위해 책을 읽겠다면서 실제로는 직접 책을 쓰느라 생고생을 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책이란 나름 검증된 전문가가 우리 대신 많은 시간을 들여 정보를 검색한 다음 유용한 지식들만 한데 묶어 놓은 것이다.

내일 우리 모두 투표 마치고 책방에 들러 책 한 권씩 삽시다. 책 읽는 사람이 성공하고 책 읽는 나라가 번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