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7.18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나치즘 망령 휩쓸었던 독일, 歸化선수들 뽑고
舊동독 출신 총리가 보듬는 自祝 장면 감동적
못 거른 분노 엿으로 내뱉은 우리 자화상이란…
한 달 동안 새벽마다 잠을 설쳤다. 월드컵 축구 때문이다. 솔직히 난 축구를 싫어한다.
30여 년 전 '군대 축구'에 질려서다. '고참'은 공격만 하고 '쫄따구'는 수비만 하는, 군대 축구식
포메이션의 단순함 때문만은 아니다. 매번 '보름달 빵과 베지밀'을 얻으려고 목숨 걸고 공을 차야 하는
군대 축구식 보상의 하찮음 때문만도 아니다.
당시 나는 아주 특별한 축구 선수였다. 우리 편이 지고 있을 때만 경기장에 들어가는 히든카드였다.
당시 나는 아주 특별한 축구 선수였다. 우리 편이 지고 있을 때만 경기장에 들어가는 히든카드였다.
들어가자마자 나는 상대편 고참의 정강이를 걷어차 집단싸움을 유도했다. 지고 있는 내기 시합을 한
번에 '파투(!)'시키는 그 역할을 나보다 그럴듯하게 할 수 있는 사병은 없었다.
군대 제대 이후로 한 번도 내 발로 직접 공을 차 본 적이 없다. 내가 축구를 자발적으로 할 이유는 전혀
군대 제대 이후로 한 번도 내 발로 직접 공을 차 본 적이 없다. 내가 축구를 자발적으로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은 참 흥미로웠다. 특히 독일의 우승 장면이 정말 멋있었다. 경기 내용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우선 독일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받으러 본부석으로 올라섰을 때, 선수들을 일일이 껴안아주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우선 독일 선수들이 우승 트로피를 받으러 본부석으로 올라섰을 때, 선수들을 일일이 껴안아주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내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구(舊)동독 출신이다. 동독에서 정치와는 아무 상관 없는 연구원을 하다가 독일 통일 과정에서
시민운동에 참여했다. 독일이 통일된 후, 보수당인 기민당 소속으로 정치권에 본격 입문하게 됐다.
사실 그녀는 소외감에 젖은 동독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면피용 카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중앙 정치
사실 그녀는 소외감에 젖은 동독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한 '면피용 카드'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그녀는 중앙 정치
무대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하며 2005년 독일 총리가 됐다. 벌써 3선에 성공해 10년째 총리를 하며, 정파를 초월해 존경받고
있다. 우리의 통일을 가정해보자. 북한에서 나고 자란 50대 초반 여성이 통일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되어 10여 년을
재임하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독일 선수들의 면면이었다. 흑인 선수도 눈에 띄고, 독일 이름이 아닌 경우도 있는 듯하여 찾아봤다.
더욱 흥미로웠던 것은 독일 선수들의 면면이었다. 흑인 선수도 눈에 띄고, 독일 이름이 아닌 경우도 있는 듯하여 찾아봤다.
독일 선수의 절반 가까이 귀화했거나 이민자 후손이었다. 터키에서 귀화한 외칠, 폴란드계인 포돌스키와 클로제, 튀니지 출신의
케디라, 가나 출신의 보아텡 등이다. 이들 선수는 경기 시작 전 연주되는 독일 국가(國歌)도 따라 부르지 않았다.
독일에서 10여 년 살았던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외국인, 특히 폴란드인·터키인·흑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독일에서 10여 년 살았던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외국인, 특히 폴란드인·터키인·흑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편견이 얼마나 심한지 잘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일의 극성 축구팬들은 인종차별적 발언이나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데
독일 국가대표 선수의 절반이 불법 이주 노동자가 가장 많은 나라 출신인 것이다.
편견을 딛고 자란 이주민의 자녀들이 동독 출신의 여자 총리를 껴안고 기뻐하는 독일의 우승 세리머니를 보며 나는 정말
편견을 딛고 자란 이주민의 자녀들이 동독 출신의 여자 총리를 껴안고 기뻐하는 독일의 우승 세리머니를 보며 나는 정말
감동했다. 근대 인류사에서 가장 추악한 나치즘의 망령(亡靈)을 축구라는 가장 보수적이고 집단주의적인 수단을 통해 극복하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독일의 축구만큼은 집단주의적 왜곡에서 벗어나 의미 있는 문화 행위로 변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새벽에 공항에 뛰어나가 잔뜩 풀이 죽어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엿 먹어라' 하는 한국 축구는 도대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 아무리 생각해도…‘엿사탕’은 아니다! /김정운 그림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자신은 전혀 준비가 안 되었다고 그렇게 고사하던 홍 감독이었다.
그런 그에게 우리는 '당신만이 유일한 희망'이라며 그토록 간절하게 감독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참 아쉽게도 그의 대표팀은
모든 경기를 정말 '거지같이'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홍 감독에게 그렇게 '엿팔매질(!)'할 일은 결코 아니었다.
월드컵 준비 기간에 땅을 샀느니, 감독 사퇴 선언을 하며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느니 하며 비난을 퍼붓는 것은 참으로 지나치다.
홍 감독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라. 정말 환장하지 않겠는가?
러시아 문화심리학자 비고츠키는 문화란 '기호(記號) 혹은 상징으로 매개된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러시아 문화심리학자 비고츠키는 문화란 '기호(記號) 혹은 상징으로 매개된 활동'이라고 정의한다.
자극에 대한 반응이 직접적이며 즉각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적 상태'는 수만 년이 지나도 별 변화가 없다.
생존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고차적 정신 과정'으로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에 반해 상징으로 매개된 활동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한다.
의미를 공유할 때 인간은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먹고사는 것과 아무 상관 없는 문화가 필요한 거다.
문화, 즉 '상징으로 매개된 활동'은 사냥한 사슴의 숫자를 나무에 칼집으로 새겨 넣어 상징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기억하는 인지능력에서 시작된다.
이 같은 각 개개인의 구체적 사유 행위를 통해 의미를 공유하는 소통이 가능해지고, 공동체의 가치가
유지된다는 것이 비고츠키가 주장하는 '행위이론(Tatigkeitstheorie)'의 핵심이다.
기분 나쁘고 맘에 안 든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는 절대 유지되지 않는다.
기분 나쁘고 맘에 안 든다고, 그 자리에서 바로 분노를 표출하는 방식으로 공동체는 절대 유지되지 않는다.
구성원 전체가 불행해지는 것은 정말 금방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가 진심으로 걱정된다면 분노의 언어들을 마구 내뱉지는 말아야 한다.
비판을 가장한 저주의 언어들을 아무 생각 없이 'RT(리트윗)'하고, 마구 '좋아요'를 눌러대지는 말자는 거다.
페이스북이 몰래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식의 대규모 '감정 전염(Emotional Contagion)'이다.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함께 사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싶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생각으로 걸러 이야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다 함께 살 수 있다. 공동체는 군대 축구처럼 그렇게 간단히 '파투'시켜서는 안 되는 거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축구만 그런 것이 아닌 것 같아 그런다.
맘에 안 들면 바로 '파투'시켜 버리는 1980년대 '군대 축구의 에이스'였기에 진짜 걱정돼서 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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