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9.20 강경희 사회정책부장)
"의원님한테 감히…." "의원님이라고 굽실거려야 하느냐."
지난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간부들의 대리기사 폭행 사건은
이것 때문에 커졌다.
대리기사들이 제일 바쁜 밤 12시 무렵.
그 시각에 대리기사 불러놓고 30분 넘게 기다리게 하니,
그 대리기사는 "그냥 가겠다. 다른 사람 부르라"고 했다.
그런 대리기사 붙들고 굳이 명함 내밀며 '국회의원이심'을 밝혔고,
일행은 "의원님에게 공손하지 못하다"고 시비 걸었다.
"국회의원 앞에서 왜 굽실거려야 하느냐"고 대답한 그 대리기사는 '괘씸죄'로 집단 폭행을 당했다.
'의원님'은 김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의원님'과 겸상하고 술에 취해 대리기사에게 폭행을 가한 일행은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김병권 전 위원장과 김형기 전 부위원장 등이었다.
이 폭행 사건에 많은 사람이 분노하고 실망하는 이유는,
세월호 유족 누군가가 술 취해서 행인과 사소한 시비가 붙은 단순 폭행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이 대리기사에게 함부로 하고, 현장을 목격한 제3자들이 보기에도 심한 폭력을 집단 행사한 의식의 저변에는
"의원님한테 감히" "내가 누군데" 심리가 깔려 있었다.
객관적으로 이 상황은
밤 12시 무렵 대리기사를 부른 사람과 불려온 대리기사 간에 '대리운전'이라는 서비스를 공급하고 구매하는
'사적 상(商)거래'였다.
대리기사 처지에서는 국회의원이든 사장님이든 말단 직원이든 다 똑같은 손님일 뿐이다.
대리기사를 부른 손님의 '격'은 최소한 이래야 한다.
시간이 곧 돈이라 종종걸음치며 일하는 이를 불러놓고 30분씩 지체했다면,
양해 구하고 그의 시간을 소비한 만큼 적절한 보상을 제안하고 서비스를 계속 구매하겠다고 하든가,
만약 공급자가 서비스를 못 팔겠다고 하면 다른 공급자를 찾으면 그만이다.
국회의원에게 굽실거리지 않는 대리기사가 무례한 것이 아니라,
거래 상대방이 거절하는데도 이를 묵살하는 그들이 무례한 손님이었다.
"국회의원 앞에서 왜 굽실거려야 하느냐"고 대꾸한 대리기사 이씨 말은,
이 순간 많은 국민이 국회의원을 바라보는 흔한 시선이기도 하다.
공짜라고는 없는 이 냉정한 세상에,
단돈 몇 천원이라도 더 벌자고 치열하게 생존하는 사람들 눈에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란,
국민 위하고 국민 대표하는 소중한 존재이기는커녕,
연간 6억원가량 세금 축내면서 온갖 특권만 누리고 생산성은 제로에 가까운 '세금 도둑' 정도로나 보이기 때문이다.
국회의원도, 세월호 유족 대표도,
그들에게 존재하는 힘의 원천은 국민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삶을 헤아려 법에 반영하고,
국민을 대신해 정부 권력을 견제하라고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존재다.
세월호 유족도,
안타깝게 자식 잃은 그들의 슬픔에 온 국민이 애도하고 공감을 표했기 때문에 주목받는 것이다.
기본적 예의도 갖추지 않고 아무에게나 거들먹거리고,
심지어 폭력까지 가할 자격이 주어진 건 아니다.
김현 의원도, 세월호 유족 대표도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큰소리쳤다는데,
이번 사건으로 온 국민이 그들을 알게 됐다.
더 즉각 알아보게 전국 벽보에 사진 좍 붙여주면 어떨까.
몰라봤다고 얻어맞고 욕먹는 애꿎은 피해자도 막을 겸.
'時事論壇 > 時流談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아광장/최중경]‘보수혁신’ 말하기 전에 보수 개념부터 세워야 (0) | 2014.09.23 |
---|---|
[시론] '판도라의 상자' 열린 英國 (0) | 2014.09.22 |
[복거일의 생각]<1>지도력의 본질 (0) | 2014.09.19 |
[복거일의 생각]<9>문제의 핵심은 가난이지 부자가 아니다 (0) | 2014.09.17 |
[김대중 칼럼] 價値觀의 혼돈 (0) | 2014.09.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