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이보름의 그림이야기] ① 즐기는 과정에서 본질을 알아갈 수 있어

바람아님 2015. 1. 20. 23:42

[조선비즈 2015-1-18 이보름 화가]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통해 행복을 경험합니다. 그래서 그림을 잘 감상할 수 있길 원합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그림 감상이 어렵다고 합니다. 초등학생부터 어른까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그림 즐기는 방법을 가르쳐 온 이보름 화가의 ‘그림이야기’를 통해 독자 여러분과 함께 그림과 예술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직업이 화가라는 이유로 ‘그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곤 합니다. 무척 곤란한 질문이죠. 꼭 답이 없어서 그런 것 만은 아닙니다. 어려운 물음이긴 하지만 찾아보면 답은 있거든요.

 

 

구스타프 모로Gustave Moreau.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 oedipus and sphinx> 1864년, oil on canvas, 206.4 × 104.8 cm. Metropolitan Museum of Art 소장. 남자 왼편에 있는 여인의 얼굴, 새의 날개, 사자의 몸통을 지닌 괴물, 스핑크스는 친부를 살해하고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을 한 그리스 신화의 비극적 인물 오이디푸스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림 또는 예술에 대한 질문 또한 복잡 미묘한 관계 속에서 다양하게 정의될 수 있기에 누구도 쉽게 답을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 물음이 ‘당신은 누구십니까?’ 라는 것과 같아서 속 시원한 단 하나의 정답을 내놓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제게 “당신은 누구십니까”라고 물어본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설명이 다 될까요?

저는 그림 그리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 사람의 아내이고 딸이고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이기도 합니다. 산에 가는 것을 좋아하고 진한 커피와 다크 초콜릿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정답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러니 ‘그림이 무엇이냐?’는 말은 결국 ‘너는 누구냐?’ 라는 물음과 마찬가지로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쉽사리 대답하기엔 너무도 다양한 면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로 규정하기 어려운 것이지요.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순간, 다른 면이 튀어 나와서 부족하다 못해 때론 거짓말이 되기도 하고, 자기 모순에 빠지기도 합니다. 뛰어난 학자들의 예술에 대한 담론조차 뜬구름 잡는 식의 선문답으로 끝나기도 하는 게 그 때문이에요.

하나의 명쾌한 답이 있는 게 아니라 여러 개의 답‘들’이 마치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펼쳐져 있는 것이죠.

그런데 제게 ‘그림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신 분은 그런 선문답이 아닌 조금 더 직접적이고 명확한 어떤 것을 말해주길 바랬을 것입니다. 반복하지만, 수학과 같은 정답은 없습니다. 예술 개념의 역사 자체가 끝없이 앞의 것을 부정하며 새로운 것을 찾아 헤맨 과정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모래알 만큼이나 다양한 모습을 지닌 미술에 대해 명쾌한 정의를 내리겠다는 것 자체가 무모한 모순이겠지요. 마치 산꼭대기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의 신비처럼 그 본질은 잘 알 수 없거든요.

그래서 저는 그림의 본질에 대한 어려운 정의를 내리기 보다는 우리가 알기 쉬운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산은 일단 올라봐야 알 수 있습니다. 흙과 풀, 나무와 바위, 새와 곤충, 시냇물 계곡 등등을 하나씩 거치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낄 수 있는 게 산의 진실이자 묘미가 아닐까요?

물론 때로는 멀리서 전체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미시적인 것과 거시적인 것이 어우러질 때, 산이 모습을 갖춰가듯, 예술 혹은 그림의 개념과 정의도 그림을 그려보고 또 감상할 때 하나씩 구체적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니 답은 찾아가고 느끼는 과정 중에 있는 것이겠지요.

물론 그림이 무엇이냐는 본질적인 질문이 거짓이거나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오히려 중요한 문제이지요. 다만 프레임을 달리해서, 아니 다양한 프레임을 통해 보는 일이 그 본질을 찾고 느끼는 데에 도움이 된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예술 혹은 그림‘적’인 것들을 찬찬히 살펴나가다 보면 본질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소박한 생각입니다.

저는 그래서 앞으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예술의 본질을 조금 드러내 보려고 해요. 제 글을 통해 그림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예술에 대한 여러분 각자의 생각이 조금은 명료하게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당황해 하실 필요는 없어요. 재미 삼아 따라가다 보면, 산등성이에서 시내를 바라보기도 하고 산꼭대기에서 노을을 마주하기도 하면서 어느덧 그림을 보는 자신의 프레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저는 믿어요. 우리의 존재와 세계 자체가 변화하고 움직이는 것이잖아요?

마치 어린아이들이 퍼즐 조각을 맞추고, 레고 블록을 쌓아 가면서 하나씩 즐기다 보면 어느덧 무엇인가 모습을 갖춰가듯, 저는 예술 혹은 그림의 본질이란 것이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즐김의 과정 속에서 어렴풋이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다음 회부터 그림 속에 숨어 있는 의미들을 살펴보면서 여러분과 함께 그림을, 미술을, 더 나아가 예술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알고 즐기는 여행을 떠나보겠습니다.

이보름 작가
이보름 작가
△이보름 화가는…
이화여자대학교와 대학원에서 한국화를 전공하였다. 성곡미술관 등에서 수십 차례의 개인전을 열었고, 파리, 도쿄 등 해외전시도 했다. 동국대 겸임교수와 중앙대 강의전담교수 등 역임.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신경림의 ‘민요기행’, 최인호의 ‘문장’ 등에 그림을 그리는 등 책과 그림의 접목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