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7

[백영옥의 말과 글] [356] 인생의 효자손

조선일보  2024. 5. 31. 23:52 마음이 힘들어 명상 수업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수업에는 집에 돌아가 해야 할 과제가 주어졌는데 인상적인 건 이 닦기 명상이었다. 이를 15분간 닦으며 이빨에 칫솔이 닿고 거품이 일어나고 세척되는 전 과정과 행위를 관찰하는 것이었다. 칫솔질이 뭐 그리 어렵겠냐고 생각했지만 평소보다 몇 배 많은 시간을 쓰기 위해선 속도를 늦춰야 했다. 결국 나는 평소 내가 분풀이하듯 이를 얼마나 세게, 빠르게 닦았는지 깨달았다. 그제야 치아에 파인 상처가 나 스스로가 무의식적으로 낸 것일 수 있겠다 싶었다. 오십견이 온 친구가 길을 걷다가 가려운 곳을 긁어 달라고 말하며 휴대용 효자손이 있는지 검색해봐야겠다고 말했을 때, 공감의 웃음이 터졌다. 오십에 이르자 갱년기를 겪는 지인..

[백영옥의 말과 글] [355] 무엇이 좋은 삶인가

조선일보  2024. 5. 24. 23:50 기차 옆의 사람과 대화하면서 가는 것과 조용히 혼자 가는 것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면 어떤 걸 선택할까. 나는 혼자를 택할 것이다. 혼자를 선호하기보다 혼란을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긴 행복 탐구 보고서’의 저자 ‘로버트 윌딩거’는 인간은 혼란을 과대평가하고 인간관계의 유익함을 과소평가한다고 말한다. 오랜 연구로 무엇이 좋은 삶인가에 대한 답을 얻었는데 그 핵심이 친밀한 인간관계의 빈도와 질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의 품격’에서 이력서와 추도사의 차이를 “이력서에 언급되는 일은 세속적 성공이 지향하는 덕목으로 타인과 비교가 불가피하지만 추도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이다. 고인이 인정이 많고 상냥한 사람이었다는 말은 유튜브 팔..

65세 이상 ‘조건부 운전면허' 추진되나.. 정부 “확정 아냐”

파이낸셜뉴스  2024. 5. 21. 14:14 정부가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조건부 운전면허’를 발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논란이 일고 있다. 21일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발표한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에 따르면 정부는 고령 운전자의 운전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경찰청은 오는 12월까지 운전능력 평가를 통한 조건부 면허제 도입에 관한 연구용역을 진행하고 있다. 연구용역은 고령 운전자에 대해 야간운전 금지, 고속도로 운전 금지, 속도제한 등을 조건으로 면허 허용하는 방안이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고령자 조건부 면허 도입 이전에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적성검사 실효성을 높이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한다....논란이 확산되자 정부는 조건부 ..

[백영옥의 말과 글] [353] 가면

조선일보  2024. 5. 10. 23:52 노예의 삶을 이야기하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한 청중의 질문이 기억에 남는데 몇 년 동안 자신에게 아낌없이 기술을 전수해주던 사장이 암에 걸려 치료 중이라 이직을 고민 중이라는 사연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직하면 직원이 몇 없는 회사가 망하진 않을까 괴롭다고 했다. 놀라운 건 강사의 호통이었다. 노예가 왜 주인 걱정을 하냐는 것이다. 세상을 갑과 을로만 보는 그의 시각에 놀라 아직까지 잔상에 남는다. 술에 취해 귀가하는 후배의 안전을 걱정해 택시 번호판을 휴대폰으로 찍은 선배가 있다. 또 한 선배는 회식 자리의 신입에게 외모 품평에 술 따르기를 강요한 상사를 제지하며 미투를 경고했다. 대부분은 이들의 행동에서 선의를 느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직장 내..

104세 철학자 김형석 “尹대통령, 다른 사람 이야기 들어야”

서울신문  2024. 5. 10. 01:21 “자유민주주의 뒷받침 지식 없어 다방면 학자들과 티타임 가지길 건강 비결은 젊은 사람과의 만남 ‘성장’했던 65~70세 때 가장 행복” “윤석열 대통령은 함께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 올해 104세 ‘한국 최고령 철학자’로 통하는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윤 대통령에게 건넨 조언이다. 김 명예교수는 9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열린 ‘김형석, 백 년의 지혜’(북이십일)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윤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를 뒷받침하는 역사적인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며 윤 대통령이 독선에 빠져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윤 대통령이 말하면 장관들도 모두 옳다고 하며 따라간다”며 “윤 대통령은 장관이 아닌 다방면의 학자들을 일주일에 한..

[백영옥의 말과 글] [352] 듣기, 읽기, 쓰기

조선일보  2024. 5. 4. 00:31 글쓰기 전반을 책으로 쓰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을 때가 있다. 거절의 이유는 방법론을 얘기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그냥’ 쓰기 때문이다. 정해진 트랙을 도는 마라토너처럼 아침이면 의자에 앉아 그냥 쓴다. 지금도 그냥 할 수 있는 힘을 키우기까지가 프로의 관건이라 믿는다. 쓰면서 스스로에게 종종 되묻는 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쓰고 싶은지 ‘남이 듣고 싶은 얘기’를 쓰고 싶은지에 대한 구분이다. 이 차이 역시 중요한데 그 사이 어딘가에 아마추어와 프로의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쓰기에 대한 다른 시각을 더 얘기하자면, 글을 잘 쓰는 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질은 쓰기가 아닌 ‘듣기와 읽기’에 있다. 내가 쓴 대부분의 글은 내가 귀 기울여 듣거나 읽은 것이다. 물론..

‘문화시설’로 변경된 송현동 부지… 이승만 기념관 건립도 가능해지나

서울신문  2024. 5. 2. 05:01 공원 조성 등 지구단위계획 변경 서울시는 “이건희 기증관 위한 것” 서울시가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대해 이건희 기증관과 주차장 조성 등을 위한 ‘북촌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을 수정 가결했다. 변경안에는 문화시설이 들어서는 내용이 포함돼 이건희 기증관과 함께 이승만 기념관 건립도 가능하게 됐다. 시는 지난달 30일 제5차 도시·건축공동위를 개최하고 ‘북촌 지구단위계획 결정(변경)(안)’을 수정 가결했다고 1일 밝혔다. 이번 변경안에는 송현동 부지(종로구 송현동 48-9 일대, 3만 6903.3㎡)의 옛 미 대사관 직원 숙소 특별계획구역을 폐지하고 문화공원, 주차장 및 문화시설로 결정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건희 기증관이 들어서기로 한 동쪽 부지가 문화시설로 지정됐..

[백영옥의 말과 글] [351] 성장통과 트라우마

조선일보  2024. 4. 27. 00:02 어린이 축구 교실에 갔다가 다친 아이를 보고 놀란 엄마가 코치를 추궁하는 걸 본 적이 있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멀리 있던 나도 들을 수 있었는데, 핏대 높이는 엄마 앞에서 정작 아이는 남 일 보듯 무기력해 보였다. 이 얘길 심리 상담사인 친구에게 말했더니 요즘 열 살 전후의 아이들도 무기력증으로 찾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그녀에게서 맞은 쪽 아이 편만 들어줘 자신의 아이에게 트라우마가 생기면 책임지라며 괴롭히는 학부모 때문에 고민인 교사 내담자 얘기도 들었다. 때린 아이에게도 사정이 있는데 마음을 읽어주지 않아 자신의 아이도 상처받았다는 것이다. 남들은 적반하장이라 읽고 본인은 정당방위라 쓰는 경우다. 알베르 카뮈는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