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의 세설신어 [17] 수경신(守庚申) 신앙 (출처-조선일보 2009.08.20. 한양대교수·고전문학) 중국의 관광기념품점에 가면 흔히 세 마리 원숭이를 새긴 나무 조각을 볼 수 있다. 각각 입과 눈과 귀를 가렸다. 일본의 신사에 가도 세 마리 원숭이 조각상을 자주 본다. 인사동에서도 심심찮게 보았다. 설명을 청하면 대뜸 시집살이 벙어..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20
정민의 세설신어 [16] 칭찬 교육 (출처-조선일보 2009.08.13.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시인 백광훈(白光勳·1537~1582)은 아내와 자식들을 고향에 두고 서울에서 혼자 자취생활을 했다. 그가 자식에게 보낸 편지 24통이 문집에 실려 있다. 편지 중에 특별히 내 눈길을 끈 것은 형남(亨南)과 진남(振南) 두 아들에게 막내 흥남(興..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9
정민의 세설신어 [15] 파초설(芭蕉說) (출처-조선일보 2009.08.06.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태준의 수필집 《무서록》에 '파초'란 글이 있다. 여름날 서재에 누워 파초 잎에 후득이는 빗방울 소리를 들을 때 '가슴에 비가 뿌리되 옷은 젖지 않는 그 서늘함'을 아껴 파초를 가꾸노라고 썼다. 없는 살림에도 소 선지에 생선 씻은 물..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7
정민의 세설신어 [14] 청선(聽蟬) (출처-조선일보 2009.07.30. 한양대교수·고전문학) 퇴계 선생이 주자(朱子)의 편지를 간추려 '회암서절요(晦菴書節要)'란 책을 엮었다. 책에 실린, 주자가 여백공(呂伯恭)에게 답장한 편지는 서두가 이랬다. "수일 이래로 매미 소리가 더욱 맑습니다. 매번 들을 때마다 그대의 높은 풍도를 그..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6
정민의 세설신어 [13] 절대 가난 (출처-조선일보 2009.07.23.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813년 6월 12일, 다산초당으로 이성화(李聖華)란 이가 찾아왔다. 당시 그는 남쪽까지 내려와 막객으로 있었다. 그는 아무리 노력해도 좀체 나아지지 않는 생활을 푸념했다. 다산은 대답한다. 물정 모르는 부인네가 서울서 살려면 고..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5
정민의 세설신어 [12] 표류선과 해저유물선 (출처-조선일보 2009.07.16.정민·한양대 교수·고전문학) 18세기 중반 청나라의 해금(海禁) 정책이 풀리면서, 중국배의 서남해안 표류가 부쩍 잦았다. 중국배가 표착하면 나주 등 관할 지역 목사는 문정관을 파견해서 구호케 했다. 실정 파악 후 배가 부서졌으면 육로로, 배가 온전하면 고쳐..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4
정민의 세설신어 [11] '호질(虎叱)'의 행간 (출처-조선일보 2009.07.10.한양대 교수·고전문학) '호질'은 '열하일기'에 실려 있다. 북경으로 향하는 길목인 옥전현(玉田縣)을 지날 때, 심유붕(沈有朋)이란 이의 점포 벽에 걸려 있던 것을 베꼈다는 글이다. 작품 서두에서 범은 영특하고 거룩하고 문무를 갖추었으며, 자애와 효성, 지혜와..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3
정민의 세설신어 [10]열하일기 완성본 (출처-조선일보 2009.07.02.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여행은 낯선 풍물 속에서 자신과 맞대면하는 일이다. 1780년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1737~1805)은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연행길에 동행했다. 그는 여정 도중 곳곳에서 당시 조선의 맨얼굴을 보았다. 망한 지 130년이 더 된 명나라의 연호.. 文學,藝術/고전·고미술 2013.12.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