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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봄! 제비를 기다리며

바람아님 2017. 2. 24. 23:22
문화일보 2017.02.24 14:40

입춘은 벌써 지났고, 우수·경칩에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가 지난 토요일이었으며, 오는 3월 초닷새가 경칩이니 남녘의 봄바람이 하루 20㎞ 가까운 속도로 성큼성큼 북상 중이다. 바야흐로 봄은 바짝 코앞이라지만 아직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정녕 절기는 한 치도 더덜 없이 제때 제 알아서 꼬박꼬박 찾아든다.


‘정이월 다 가고 삼월이라네/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며는/ 이 땅에도 또다시 봄이 온다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오’. 이 ‘강남아리랑’은 코흘리개 때부터 즐겨 불렀던 봄노래다. 머잖아 제비도 어김없이 올 것이다. 좀 이르다 싶지만, 미리 제비 이야기를 하면서 애타게 기다리는 봄을 맞이하자.


그런데 제비가 올 무렵엔 제비꽃(violet)도 막 겨울잠을 깬 봄밭에서 보랏빛 꽃망울을 서둘러 터뜨린다! 제비는 중구일(重九日)인 음력 9월 9일에 강남 갔다가 중삼일(重三日)인 삼짇날에 되돌아온다. 이같이 수가 겹치는 날에 번갈아 오가는 새라 하여 영물, 길조(吉鳥)로 여겨왔다. 또 ‘제비가 빨리 오는 해는 풍년이 든다’는데, 이는 아마도 지난 세한(歲寒)이 푸근했음을 알리는 말일 게다. 하여 제비는 절후를 훤히 꿰고 있는 일기예보관이다.


우리나라엔 ‘제비’와 ‘귀제비’ 2종이 여름 철새로 온다. 제비(Hirundo rustica)는 참새목 제빗과 조류로 몸길이 17∼19㎝, 날개 32∼35㎝, 몸무게 16∼22g 남짓으로 등은 푸른빛이 도는 검정으로 윤기가 난다. 몸통은 청색이고, 이마와 멱(목의 앞쪽)은 어두운 적갈색이며, 배는 희고, 꽤나 긴 꽁지는 가위 모양으로 갈라졌으며, 날개가 발달하여 엄청 빠르다.

암수는 생김새나 몸피가 비슷하지만, 방향과 속도를 조절하는 길게 뻗은 멋스러운 바깥꽁지깃(tail streamer)이 암컷보다 수컷이 10%쯤 더 길다. 또, 흔히 수놈 꽁지깃에는 흰점이 있고, 거기에 새 이(bird lice)가 많이 끼어 깃털에 구멍을 내는 수가 있다 한다.


바꿔 말하면, 제비 수놈의 매력은 흰점이 듬성듬성 난 산뜻한 꼬리에 있다. 멋지고 번듯한 꽁지깃을 가진 수컷이 병에 강하고, 생식력도 높다는 것을 암놈들이 귀신같이 알아서 그런 놈을 배필(配匹)로 골라잡으니, 일종의 ‘성선택(性選擇·sexual selection)’인 것. 이 때문에 저고리 뒤가 마치 제비 꼬리처럼 양 갈래로 길게 내려온 멋진 연미복(燕尾服)의 의미를 알 것이다.

귀제비(Cecropis daurica)는 제비를 빼닮았지만, 제비보다 몸집이 좀 크고, 배가 검으며, 뺨과 멱이 붉다. 제비가 인가 처마에 꼭 보시기 꼴의 집을 짓는 반면에 귀제비는 다리 밑이나 산기슭의 깎아지른 벼랑에다 길쭉한 깔때기 모양의 둥지를 만든다.


제비는 봄을 물고 오는 진객(珍客)이다! ‘명랑하고 행복한 가정에는 제비가 찾아든다’고 했겠다. 제비가 올라치면 마당에 물을 뿌려주어 진흙을 짓이기기 쉽게 해주었으니, 옛 분들의 제비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제비는 침을 섞어가며 동글동글 뭉친 덩이덩이 흙을 물어다 차곡차곡 쌓으면서 사이사이에 지푸라기를 덧끼운다. 침이 마르면서 시멘트처럼 굳어져 단단한 집이 된다.


‘제비는 작아도 강남을 간다’나 ‘제비는 작아도 알만 잘 낳는다’는 모양은 비록 작아도 제 할 일은 다함을 비긴 말이다. 암놈은 푹신한 알자리에다 하얀 바탕에 붉은 점이 박힌 알을 하루 한 개씩 낳아 대여섯 개가 모이면 곧바로 알 품기에 든다. 줄탁동기(啐啄同機)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 어미가 밖에서 쪼는 것을 ‘탁’이라 하니 알까기를 하려면 새끼와 어미가 안팎에서 같이 쪼아야 한다. 그러나 결국 알을 깨고 나오는 것은 병아리 자신의 몫이렷다. 알을 품은 지 보름 만에 알껍데기를 깨고 나오니 그때가 대개 유월로 벌레가 한창 득실거릴 때다.


어미아비는 연신 부산하게 벌레를 물어 나른다. 아귀다툼이 따로 없다. 새끼들은 어미 소리를 듣고는 눈을 부라리고, 신들린 듯 목을 한껏 빼 짹짹거린다. 앞다퉈 노란 주둥이를 짝 벌리고는 모가지를 바들거리며 껄떡인다. 애처로우리만치 애절한 울부짖음은 저 먼저 얻어먹으려는 어리광이고, 꾀부림이요, 보챔인 것.

제비는 1초에 7∼9번 날갯짓해 시속 250㎞로 휙휙 잽싸게 날면서 파리·하루살이·벌·잠자리 따위 날벌레뿐만 아니라 물 위의 것마저도 날쌔게 낚아챈다. 이렇게 곡식은 먹지 않고 해로운 벌레만 잡으니 이로운 새다. 그래서 ‘곡식에 제비 같다’란 청렴결백한 사람을 빗댄 말 아닌가.


제비의 귀소본능(歸巢本能)은 예로부터 알아줬다. 흥부네 집 처마 둥지에 새끼 세 마리가 태어났다. 맏이는 가뿐히 날아올랐으나 둘째는 그만 낙상(落傷)하고 말았다. 맘씨 좋은 흥부는 명태 껍질로 다친 다리를 친친 감고 당사(唐絲)로 매매 처매주었다. 강남(동남아)으로 떠난 것들 중에서 이듬해 어미는 5%, 새끼는 1% 남짓이 제가 태어난 곳으로 되찾아든단다. 그런데 농약·제초제가 없었던 때에 비하면 그 수가 확 줄었고, 더구나 강남서 오다가 일본으로 머리를 튼다는데…. 그래도 씨는 마르지 않아 아직 시골에선 더러 제비를 본다.


끝으로, ‘제비’가 들어가는 말을 살펴본다. 뒤통수나 앞이마의 한가운데 골을 따라 아래로 뾰족하게 내민 머리털을 ‘제비초리’, 소 안심에 붙은 고기를 ‘제비추리’, 직업 없이 유흥가를 떠돌며 돈 많은 여성에게 들러붙는 남자를 ‘제비족’이라 이른다. 또, ‘물 찬 제비’란 제비가 쏜살같이 물을 차고 날아오르듯이 민첩하고 날씬한 모양새를 한 사람을 빗댄 말이다.

아, 그리운 제비여! 그리고 따뜻한 봄날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