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눕터뷰]제주 해녀 기록하던 사진작가, 진짜 해녀가 되다

바람아님 2019. 9. 30. 05:00

중앙일보 2019.09.28. 12:22


IT업계 직장인, 디자이너, 초고속 승진, 높은 연봉과 안락한 삶….

30대 초반의 그를 장식하는 수식어다. 미친 듯 일에 몰두했고 프로젝트를 마칠 때마다 다이빙하며 바닷속을 탐험하는 삶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 삶의 무게가 검은 파도처럼 그의 가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해녀가 된 사진작가인 유용예(40)씨는 그저 바다가 보고 싶은 마음으로 찾은 제주에서 해녀를 만났고 운명처럼 그들에게 빠져들어 갔다.
해녀이자 사진작가 유용예씨가 물질 도구들과 함께 집 앞마당에 누었다. 왼쪽 위는 전복따는 '비창'과 문어잡는 '골갱이' 등의 도구. 그물모양은 채취한 해산물을 넣는 망사리다. 가파도의 해녀들은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만든다. 유씨는 수중 촬영이 가능한 '하우징'을 장착한 카메라를 들고 누웠다. 오른쪽은 고무옷과 오리발. 고무옷 위에 올려진 조끼는 '어깨말이'로 바람이 많은 지형상 입는 가파도 해녀만의 특징이다. 동그란 모양의 테왁은 물질시에 이동하거나 물에 떠있기 위한 도구다. 유씨의 첫 테왁으로 친한 해녀 어머니가 선물해준 것이다. 장진영 기자

“밤바다에서 막걸리 한 잔 놓고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어요. 울렁이는 내 마음처럼 바다도 암울하게 보였죠”

일에 대한 성취감이 더는 희열로 느껴지지 않던 때, 제주를 찾았다. 바다만이 마음을 위로해주었기 때문이다. 섬의 구석구석을 돌며 바다를 바라봤다. 본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섬 가파도 포구에 앉아 있던 날이었다. “여자 혼자, 그것도 밤에 그러고 있으니 신경이 쓰였는지 한 해녀 어머니가 옆에 앉으시더라고요"

제주도 서남쪽 모슬포항에서 배를타고 10분이면 가파도에 닿는다. 200여명이 사는 가파도는 상동마을과 하동마을로 나눠져 있으며 섬을 가로지르는데는 10분이면 족하다. 사진 가운데가 상동 포구, 위쪽으로 보이는 부분이 제주도 본섬이다. 장진영 기자
"솔직히 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삶으로서 바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바다는 그에게는 암울한 마음의 반영이었고, 해녀에게는 삶의 터전이었다. “저 아래서는 숨도 안 쉬고 일하는데, 땅에서 무엇이든 못하겠어” 어머니의 한마디에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날 수 있었다.
“모든 세포가 가파도로 향하는 기분이었어요” 일주일에 서울에서 3일 일하고 나머지 4일은 가파도에서 지냈다. 뚜렷한 목적은 없었다. 그냥 궁금했다. 이 끌림이 무엇인지. “그 밤, 바닷가에서 만난 해녀 어머니 집에 무작정 들어가 빈방을 차지하고 본격적으로 이곳을 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죠”
지난 2018년 가파도 마을 담벼락에서 진행된 전시. [사진 유용예]

그러나 쉽게 사진을 찍을 수는 없었다. 그간 해녀를 고된 직업 또는 남루한 행색으로만 기록한 사진들이 많은 탓이었다. “1년 넘게 사진은 찍지 않고 그냥 따라만 다녔어요. 무작정 들이대기보단 공부한다고 생각했죠” 아침 물질에 따라가 일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한밤 중 "멜(멸치) 잡으러 가자"는 말에 하동포구로 이동해 촬영 중인 유용예씨. 장진영 기자
“초코파이 한 상자를 챙겨간 적이 있었는데 그게 다 녹아버릴 때까지 나오지 않는 거예요. 밥도 안 먹고 이 바다, 저 바다를 옮겨 다니며 물질을 하시더라고요” 눈치껏 짐을 들어주고 안부를 물었다. “처음엔 ‘저리가라게(저리 가라는 제주도식 방언)’하며 밀쳐내시기도 했는데 나중엔 갓 잡은 소라를 깨서 입에 넣어주었어요” 해녀를 짝사랑하는 그와, ‘츤데레’ 해녀들은 그렇게 거리를 좁혀갔다.
유용예씨의 카메라. 왼쪽은 하우징 장비를 장착한 DSLR. 오른쪽은 35mm 필름 카메라. 장진영 기자
“외부에서 바라봤을 땐 해녀의 삶이, 섬에서의 생활이 힘들고 외로울 줄만 알잖아요. 섬은 다채롭습니다. 방식이 조금 다를 뿐 이곳에도 삶과 희열이 있었어요” 물질에 필요한 테왁(해녀가 수면에서 몸을 의지하거나 헤엄쳐 이동할 때 사용하는 도구)은 알록달록한 이불 홑청을 뜯어 씌운다. 망사리(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그물망으로 테왁에 매단다) 하나도 기능과 형태를 고려해 직접 손으로 짠다. 그저 도구가 아니라 예쁜 벗을 만드는 것이다. 마을회관에는 흥겨운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고 작은 섬을 거니는 여유도 잊지 않는다.
지난 8월 '물벗'을 주제로 열린 전시에서 겨울철 해녀들이 몸을 녹이던 '불턱'을 재현했다. 사진 유용예

“해녀들은 ‘바다 아니면 못살아. 죽어도 바다에서 죽어야지’라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자식들은 이미 장성해서 생계형이 아닌데도 꼬박꼬박 바다에 나갑니다. 그만큼 바다를 좋아하는 거죠. 아파도 물속에 다녀오면 낫는 거 같다고 한다니까요” 그는 해녀와 바다는 하나로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강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해녀 어미니들과 물질 나가는 길. [사진 유용예]
1년쯤 지나 카메라를 들었다. 다이빙 경험을 살려 공기통을 메고 물질을 함께 했다. “그렇게도 익숙한 바다였는데 잘하고 싶은 마음 탓인지 너무 버벅댔어요. 장비도 무겁고, 카메라도 무겁고 마음대로 움직이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에 비해 해녀들은 오리발 하나만으로도 물고기처럼 빠르게 움직이더라고요” 결국 촬영을 멈추고 나와야만 했다. 그다음부턴 맨 숨으로 해녀들과 함께 촬영에 나섰다.
유용예씨가 지난 8월 전시했던 '물벗'의 사진과 함께 섰다. 이 사진들은 곧 문을 여는 '가파도 사진관'에 전시될 예정이다.
장진영 기자

몇 년간의 작업을 모아 마을 담벼락에서 첫 전시회를 열었다. “사진 찍어서 가져다준 사람은 네가 처음이라고, 그리고 크게 뽑힌 본인들의 사진을 보면서 웃던 어머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어요”
활영중인 유용예 작가. [사진 유용예]

해녀뿐 아니라 마을의 구석구석을 찍었다. 바람에 누운 풀과 돌멩이 하나에도 섬이 녹아있는 것 같았다. 하루를 기록하고 구석구석을 지도로 그렸다. “하도 찍고 그리니깐 ‘간첩 아니니?’라는 소리도 들었어요. 섬사람들은 익숙해서 그런지 이곳의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지 잘 몰라요” 사명감에서 하는 일은 아니라고 했다. 섬을 면밀히 보며 자신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되었다고 했다.
유용예 작가는 가파도 해녀 생활상을 공유하기 위해 태왁과 망사리를 만드는 워크샵을 진행하고 있다. 워크샵에는 타지역 해녀들과 일반인들이 참여한다. [사진 유용예]

섬에는 ‘행복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입도 3년 차 때. 엄청 추운 겨울밤이었어요. 작은 전기장판 위에서 깜박 졸았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너무 외롭다’라고 생각하며 잠이 들었는데 아침에 떠오른 해를 보니 ‘좋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더군요. 외롭고, 괴롭고, 좋은 감정들이 이어졌죠” 지금은 외로움의 ‘외’자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질, 밭일, 촬영, 교육 등으로 하루가 꽉 채워지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진짜 해녀’에 도전했다. “어느 날 같이 물질 나간 해녀분들 수가 너무 적은 거예요. 다들 병원에, 자식 집에 가시느라. 몇 년 사이 노쇠해져 간 분들이 많아졌어요. 할망바다(나이든 해녀들이 물질하는 얕은 바다)마저도 없어질까 두려웠죠. 내가 해녀가 되어야 이 기록을 이어나갈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길로 법환해녀학교에 등록했다. 80시간의 교육과 3개월의 인턴생활을 거쳐 정식 해녀로 ‘가파도 어촌계’에 입성했다. 해녀는 ‘하군-중군-상군-대상군’으로 나뉜다. 등급에 따라 들어갈 수 있는 바다의 깊이가 정해져 있다.
가파도의 해녀들은 제주 본섬보다 바람이 많이 불어 고무옷 위에 조끼를 착용한다. 이것을 '어깨말이'라고 하는데 대부분 직접 만들어 입는다. 허리춤에 추를 차지 않고, 이 어깨말이에 추를 넣고 물질한다. 장진영 기자
왼쪽부터 해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빗창. 전복을 딸때 사용한다. 호미처럼 길쭉하게 생긴 호맹이는 돌 틈의 소라나 문어 등을 잡는데 쓴다. 미역과 톳 등을 채취할때 사용하는 낫인 호미. 장진영 기자
테왁과 망사리. 장진영 기자

해녀로서의 느낌은 자연스레 익어갔고 현재 ‘중군-상군’ 해녀들과 같이 작업하고 있다. “해녀가 되고 나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저 피사체가 아니라 모든 것이 삶으로 인식됐죠. 바다는 둘씩 짝을 지어 들어가야 합니다. 한 어머니가 ‘용예야 너랑 나랑 물벗하여 바당가자’라고 하셨을 때 내가 진짜 해녀가 되었고, 그들의 삶으로 들어왔다 는 걸 느꼈어요”
유용예씨는 물질 후에 지형과 그날의 날씨, 물때 등을 기록해 지도로 만들고 있다. 장진영 기자

시각의 확대는 섬 생활 8년 만에 기록의 확장을 불러왔다. “처음엔 해녀를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가파도라는 섬을 알고 싶습니다” 그는 물질하는 해녀 사진을 포함해 가파도 전체를 담아내고 있다. 물질 후엔 바다의 지형과 물때 특성을 기록한 ‘가파도 해녀여지도’를 그린다. 전교생이 8명뿐인 가파초등학교 아이들과 섬을 기록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그간 전시한 사진과 가파도 생활사 출판을 위한 ‘가파도 사진관’도 곧 문을 열 예정이다.


“처음엔 짝사랑이고 열병인 줄 알았어요. 최근에야 이 섬을 이토록 좋아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 자연에서 뛰어놀던 기억이 너무 좋게 남아 있었는데 어른이 되고 남들처럼 살면서 삶이 변형되어갔죠. 가파도에 와서 삶의 잊힌 부분들이, 그토록 그리워하던 모든 것을 찾을 수 있었어요. 오롯이 나만 바라보며 정화하는 느낌이랄까요. 이곳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공간입니다”

유용예 작가는 가파도의 할머니로 남고싶다고 했다. [사진 유용예]
그는 가파도의 할머니로 남고 싶다고 했다. “해녀들은 서로를 ‘언니’라고 불러요. 나도 우리 언니들처럼 머리가 하얗게 되어도 이곳에 남아 아름다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습니다”


사진·글 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 눕터뷰

「 '누워서 하는 인터뷰'의 줄임말로, 인물과 그가 소유한 장비 등을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형식의 인터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