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사설] 아베 홀로코스트 추모가 쇼로 비치는 까닭

바람아님 2015. 1. 21. 16:24

(출처-조선일보 2015.01.21)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19일(현지 시각)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있는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추모관을 방문했다.
그는 "나는 오늘 특정 민족을 차별하고 증오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인간을 어느 정도까지 잔혹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배웠다"고
말했다. 또 "차별과 전쟁 없는 세계,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실현해야 한다"며 "좀 더 적극적으로 공헌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방명록에는 "이런 비극이 절대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고, 그의 부인은 옆에서 눈물을 흘렸다.

올해는 한민족에겐 광복 70년이 되는 해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홀로코스트 수용소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아베 총리가 작년 12월 총선에서 이긴 뒤 첫 해외 방문지로 이곳을 택한 것은 이런 점을 고려해 평화와 인권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색칠해보려는 정치적 선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와 정권 주역들이 집권 후 2년여간 해온 언동(言動)에 비춰보면 이게 과연 같은 사람의 것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70~80년 전 군국주의 일본은 아시아 제패 야욕에 사로잡혀 동아시아와 태평양 전역(全域)에서 전쟁을 일으켰다. 
나치 정권이 유럽에서 홀로코스트 만행을 저지르는 동안 일본은 한반도에서 수만 명의 젊은 여성을 군대 위안부로 
강제 동원해 중국·동남아로 끌고 다녔다. 수십만 한국인을 병사와 전쟁 물자를 생산하는 노역자로 징용했다. 
당시의 참상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징용 피해자들이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베 총리는 이런 전쟁 범죄를 지우는 일에 몰두해왔다. 
그는 2012년 총리 취임 후 한국과 중국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戰犯)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靖國)신사를 참배했다. 작년 6월엔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하고 사과한 '고노(河野) 담화'를 
사실상 부정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최근엔 미국 교과서의 위안부 관련 내용 정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아베 정권 주역들의 머릿속엔 일본이 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지 않았더라면 전범 국가가 되는 일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있다.
아베 본인도 "침략에 대한 정의가 (국가마다) 다를 수 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들은 일본을 '전쟁하는 나라'로 바꾸기 위해 헌법 해석 변경이라는 기묘한 방식까지 감행했다. 
아베 정권이 종전(終戰) 70년인 오는 8월 15일 내겠다는 새로운 담화도 이런 차원에서 준비될 가능성이 크다.

7500만 한민족은 아베 총리가 군국주의 일본의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의 잔혹성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위안부 할머니들과 강제 징용 피해자들 앞에 고개를 숙이며 사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런 그가 홀로코스트 추모관에선 민족 차별의 잔혹성을 말하고 인권을 지킬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데 공헌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위선(僞善)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