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4.07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하고 있다.
고령화는 출산율 저하와 평균수명 증가로 벌어지는데, 우리는 그야말로 쌍끌이 곤혹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의 합계 출산율은 2005년 1.08명으로 바닥을 친 후 2012년 한 해 겨우 턱걸이한 걸 빼고는
'초저출산'의 기준선인 1.30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평균수명은 드디어 80세에 이르러 세계 25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질병에 시달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을 의미하는 '건강 수명'은 세계 50위로
필리핀(44위), 베트남(45위), 중국(48위)보다도 낮다. 예전에 비하면 분명히 오래 사는데 덤으로 사는
기간 대부분을 병마에 시달리며 산다는 말이다. 인생 100세 시대에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아야지(99· 88)
겨우 88세를 구질구질하게 살아서야(88·99) 되겠는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태국에서 일어난 일'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당신이 만일 당신의 미래 에너지를 모두 삶에만 투자한다면 당신은 잘 죽을 수 없게 된다. …
요컨대 삶과 죽음은 동일한 가치를 지닌다.' 이제는 웰빙(well-being) 못지않게 웰다잉(well-dying)이 중요한 시대다.
지난 3월 23일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의 주도 아래 1만명이 훨씬 넘는 발기인이 모여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본부'가
출범했다. 이미 결성돼 있던 '웰다잉 문화 조성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과 더불어 오는 1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법안 제정 공청회를 연다. 삶의 현장에는 여야가 따로 있겠지만 죽음 앞에서는 함께 머리 숙이리라 기대한다.
천상병 시인은 '귀천(歸天)'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불행하게도 요즘 우리의 세상 소풍은 끝이 별로 아름답지 못하다.
나는 천 시인이 "소풍 끝나는 날"이 아니라 "끝내는 날"이라 말한 것에 주목한다.
이 세상에 오는 길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떠나는 길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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