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3.31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1994년 서울대 교수가 되어 귀국했을 때 동물행동학을 전공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강연 요청이 밀려들었다. 화면 가득 멋진 동물 사진을 띄운 채 그들의 신기한 행동에 관해 설명하면 어렵지 않게 청중의 관심을 끌
수 있었다. 하지만 강연을 마친 다음 질문을 하라면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개미 강연을
했는데 이게 웬일인가. 강연 도중 마구 손이 올라오는 게 아닌가. 무엇보다 질문 내용이 상상을 뛰어넘었다.
"개미 세계에도 믿음이 존재하나요?" "개미와 인간이 대화할 수 있나요?"
명색이 개미학자였건만 나는 한 번도 그런 상상력 풍부한 질문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청중의 질문은 죄다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개미'의 설정이 사실인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개미 강연마다 쏟아지는 이런 질문에 일일이 답하기 귀찮아 내가 쓴 책이 바로 '개미 제국의 발견'이다.
'개미'는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팔렸다고 한다. 한민족은 왜 이렇게 개미에게 열광하는 것일까?
오는 4월 2일 국립생태원은 아시아 최대 규모의 '개미세계탐험전'을 연다.
국내 개미로 시작하지만 조만간 기상천외한 해외 개미들을 도입해 전시할 예정이다.
지구 최초의 농사꾼 잎꾼개미가 중남미 열대에서 하듯이 나뭇잎을 잘라 줄지어 물고 들어와 버섯을 경작하는 모습을
코앞에서 보게 될 것이다. 굴 천장에 거꾸로 매달린 채 동료들이 채취해 온 꿀을 받아 저장하는 '살아 있는 꿀단지' 개미와
애벌레가 고치를 틀 때 분비하는 실크로 나뭇잎을 엮어 방을 만드는 베짜기개미도 전시된다.
개미 종교는 아직 관찰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이제 페로몬을 합성해 개미에게 말을 걸 수 있다.
우리의 대화 의지를 개미가 알아차리는 일만 남았다.
전시장의 '개미과학기지'에는 일방적으로 설명이나 해대는 전시가 아니라 개미의 집단지성에 관한 지적 도전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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