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5.05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1858년 6월 18일 다윈은 말레이군도에서 야외 연구를 하던 젊은 학자 앨프리드 월리스가 보낸 편지를
받는다. 그 안에는 월리스가 그해 2월에 쓴 짤막한 에세이가 들어 있었는데, 비록 용어와 표현은 달랐지만
다윈이 20년 동안이나 준비해 온 자연선택 이론의 요약문으로 손색이 없었다. 당시 어린 아들이 사경을
헤매 경황이 없던 다윈은 거의 모든 걸 포기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 다윈을 대신해 그의 동료 찰스 라이얼과 조셉 후커는 요즘의 지식재산권법과
그런 다윈을 대신해 그의 동료 찰스 라이얼과 조셉 후커는 요즘의 지식재산권법과
저작권법에 따르면 엄연한 불법 행위를 저지른다.
다윈이 1847년 후커에게 보낸 에세이와 1857년 하버드대 에이사 그레이 교수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월리스의 에세이와 짜깁기해 불과 2주 후인 7월 1일 런던린네학회에서 발표했다.
이 사건으로 화들짝 놀란 다윈은 7월 20일부터 라이얼의 제안을 받아들여
아마 내버려뒀으면 백과사전 분량이었을 '자연선택' 책의 요약문을 쓰기 시작했다.
이듬해 11월 24일 물경 502쪽짜리 요약문으로 출간된 책이 바로 '종의 기원'이다.
그런데 최근 런던킹스칼리지 마이클 윌(Michael Weale) 교수가 린네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월리스의 에세이보다도
그런데 최근 런던킹스칼리지 마이클 윌(Michael Weale) 교수가 린네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월리스의 에세이보다도
27년이나 앞서 출간된 스코틀랜드 농장주 패트릭 매슈(Patrick Matthew)의 책에도 '종의 기원' 요약문 같은 글이 담겨 있었단다.
책은 1831년 12월 27일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떠나기 전에 출간되었지만, 그가 학계의 주류도 아니었고 문제의 글이 부록에
담겨 있어서 그랬는지 다윈은 물론 그 어느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했다.
정작 매슈는 1874년에야 사망했으니 '종의 기원'은 물론 1872년 '인간의 유래' 출간도 지켜보았으리라.
대체로 위대한 아이디어는 이처럼 우후죽순처럼 돋아나는 법이다.
누가 틔운 싹이 끝내 꽃을 피우는가는 그 나름의 운과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다윈의 숲을 거닐고 있다.
'其他 > 최재천의자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17] 부드러움의 힘 (0) | 2015.05.19 |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16] 요기이즘(Yogiism) (0) | 2015.05.12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14] 개미의 성공 (0) | 2015.04.28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13] 4월 21일과 생태학자 (0) | 2015.04.25 |
[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12] IQ와 입양 (0) | 2015.04.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