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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믿음] 어느 선배의 속세 체험기

바람아님 2015. 5. 17. 11:33

[중앙일보] 입력 2015.05.16

사바세계 경험차 택시 몰았더니
'일심'으로 택시 몰기 정말 어렵더라
세상사 모든 일 명암 있어
지금은 봄을 즐기자

곡우 입하가 지나면 무슨 절기가 다가올까. 산과 들에 꽃이 떨어지면 정원 작약이 개미를 불러 모은다. 떫은 차(茶)라도 벗과 마주앉으면 그 향이 더욱 감미롭다. 차 맛이 그리워 남도 차를 구입해 몇 잔을 다렸다. 5월은 행사가 많다. 축제도 여기저기 피어난다. 비가 오는 지난 곡우절(穀雨節)에 몇몇 선배와 점심을 했다.

그날 가장 재미난 건 어느 선배 교무가 휴식년도에 택시 운전기사를 했다는 이야기다.

대개 휴식년도에는 몸을 추스르거나 휴식을 취하려고 멀리 오지여행을 떠나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그런데 이 선배는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고뇌하며 살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복잡하고 불편하다고 말하는 부대낌의 사바세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스스로 체험하기 위해 택시 운전기사를 택했다고 말했다.

한번은 술 취한 택시 승객이 자기 집에 도착해서는 돈 가지고 나올테니 기다리라고 했지만 막상 30분을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아 그냥 온 적이 있다고 한다. 또 어느 때는 운 좋게도 한 여스님이 버스터미널에서부터 자기 절까지 가서 같이 차를 한잔 하자고 하기도 했단다. 시간 나면 또 오라고 대접을 톡톡히 하면서 말이다.

궂은 일 기쁜 일 와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일심으로 택시를 운전하는 일이었다고 한다. 또 그 ‘일심’하는 일보다 더 힘든 건 날마다 회사에 사납금 채워넣을 걱정이었다고 했다. 날은 더운데 하루 종일 손님을 좇아 다녀도 일당을 못 채웠을 때, 다급하게 친구 교무에게 전화해 같이 택시 타고 경치 좋은 데 다니며 택시요금을 친구교무에게 내게 하는 어거지도 종종 부렸다고 했다.

한편으로 미안했지만 어쩌면 둘 모두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인 동시에 드라이브 재미도 쏠쏠하게 느낀 소중이 시간이 아니었나 싶다고 회상했다. 수행한다는 것은, 그리고 ‘도가 생활’을 한다는 것은 내가 세상에 앞선다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세상의 가장 뒤에 사는 일인지도 모른다. 모든 스토리는 동전의 앞뒤와 같은 속성이 있어서 앞면의 이야기 뒤에는 그 사람이 실제 말하는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꽃이 아무리 좋은 향기를 내는 화려한 꽃이라 해도 보이지 않는 진흙이 뿌리를 받쳐주지 않으면 그 아름다움과 향기를 만들어 낼 수 없듯이 말이다. 버거운 일이나 어이없는 일을 겪을 때, 병고에 시달릴 때, 우리는 절대적인 그 무언가의 힘에 의지하고 기도하며 고통을 헤쳐나가고자 한다. 고통을 겪지 않고 생각으로만 타인을 동정하는 게 얼마나 무성의하며 가벼운지를 스스로 깨달으면서 말이다.

소태산 대종사님 법문은 항상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깊은 향기가 있다.

“선(善)을 행하고도 스스로 덮어두어야 그 덕이 훈훈한 향기가 되어 사람 가슴에 꽃을 피우고, 악은 힘들어도 그 뿌리를 건져내야 온당한 근심이 소멸되리라”는 말씀은 우리가 어두운 방에 켜 놓은 작은 불빛의 고적한 맑음처럼 밝다.

외국에서 손님이 와서 송화가루 날리는 충주호를 배타고 횡 하니 돌아보는 봄나들이를 했다.

봄비가 모이고 나무뿌리들이 내뱉은 물이라 그런지 맑은 물이 소나무 그늘사이로 흘렀다. 조선조 최경창은 ‘백운동’이란 시에서 이렇게 말했다.

백운동 계곡을 찾아갔더니(行尋白雲洞)
골짝 비고 시내는 잔잔하구나(洞虛溪潺潺)
흰 구름 아침에 나가더니만(白雲朝出去)
저녁인데 여전히 안 돌아온다(日夕猶未還)

흘러가는 시냇물에 하루해를 다 흘려보내도록 백운동의 흰 구름 돌아올 생각을 않네. 내 마음을 더욱 맑게 해주는 시다.

정은광 교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