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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24] 語順과 띄어쓰기

바람아님 2015. 7. 7. 07:58

(출처-조선일보 2015.07.07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동물의 의사소통 메커니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동안 새들의 노래를 분석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할애했다. 그런데 새들의 노래는 듣기에는 아름답고 화려하지만 정작 그 의미는 단순하고 한결같다. 

새들 세상에서 노래는 거의 예외 없이 수컷이 부르는데, 종마다 제가끔 곡명은 달라도 모두 

"나랑 결혼해주오", 즉 사랑의 세레나데다.

새들의 노래는 지방에 따라 약간의 사투리가 있긴 해도 특별히 배우는 게 아니라 어른 수컷이 되면 

누구나 본능적으로 거의 똑같이 부른다. 암컷들은 그 길고 복잡한 멜로디를 음절 단위로 쪼개어 적당히 

뒤섞어 들려줘도 대충 알아듣는다. 

"나랑 결혼해주오"든 "결혼해주오 나랑"이든 어순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반면 띄어쓰기는 매우 중요하다.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와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는 확실히 구분한다는 말이다. 

새들의 노래방에서는 박자만 확실히 지키며 얼마나 힘 있고 줄기차게 질러대느냐가 관건이다. 

우리 노래방에서도 대체로 그렇지만.

최근 스위스와 영국 생물학자들이 호주의 밤색머리꼬리치레가 음소(音素) 혹은 단어라고 간주할 수 있는 음 단위를 조합해 

의미를 전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가 없는 음 단위 '가'와 '나'를 예를 들어 '가나'로 이어 부르면 하늘을 날면서 다른 동료들을 불러들이는 

신호가 되고, '나가나'로 조합하면 새끼들에게 밥 먹을 시간을 알리는 신호가 된다. 

이런 점에서 밤색머리꼬리치레는 노래(song)를 부르는 게 아니라 의사를 전달하기 위해 소리(call)를 지르는 것이다.

그동안 단어를 조합해 의미를 생성하는 방식은 

인간만 구사하는 줄 알았는데 처음으로 다른 동물의 언어에도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가 하는 까치 연구에서도 이제 어순을 분석할 필요가 있을 듯싶다. 

수다로 치면 까치도 앵무새나 꼬리치레 못지않은 만큼 분명히 뭔가 엿들을 게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언어는 동물의 노래가 아니라 소리로부터 진화한 게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