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23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 이화여대 석좌교수
요즘 젊은이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들 녀석도 중·고등학생 시절 미드(미국 드라마)에 푹 빠져 살았다.
아들이 제일 열광했던 드라마는 '프렌즈(Friends)'였다. 미국에서 무려 15년이나 살았지만 '프렌즈'는
내가 귀국하던 1994년 시작한 드라마라서 명성만 익히 들었을 뿐 실제로는 거의 본 적이 없었다.
아들과 공감대를 확장하자는 취지로 우리 부부는 어느 해 여름 1년치 비디오를 빌려 하루 종일 아들과
함께 시청했다. 대장정을 마치자마자 아들은 우리에게 재미있었느냐 물었다. 확신에 찬 아들의 목소리에
일단 동의하면서도 나는 생물 '꼰대'의 토를 달고 말았다. 무슨 놈의 드라마에 일년 내내 나무가 단 한
그루도 나오지 않는 거냐고.
미국 과학한림원회보 최신호에 바르셀로나 환경전염병학연구소의 연구 논문이 실렸다.
2012년 1월부터 14개월 동안 그 지역 7~10세 아동 2593명의 인지능력 변화를 3개월마다 측정했는데
학교 교정과 주변 녹음(greenness) 정도가 아이들의 지적 능력 향상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녹지 공간 확보가 정신 건강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는 많았지만 지적 능력도 개선한다는 결과는 처음이다.
연구진은 "자연을 가까이한다는 것은 두뇌 발달에 결정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친다"며 자연 속에서 성장하면
좀 더 적극적이고 활동적으로 행동하고 자제력과 창의력을 갖추게 된다고 주장했다.
자연을 접하면 왜 지적 능력이 향상될까? 나는 녹색 자연의 다양함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시스템 중에서 인간의 뇌와 자연생태계가 가장 복잡하다.
자연휴양림은 피톤치드 같은 화학물질만 내뿜는 게 아니라 그 엄청난 구조적 다양함으로 우리의 뇌를 긍정적으로 자극한다.
자연생태계는 인간의 출현 훨씬 전부터 동물의 뇌와 공존해왔다.
'초원의 집'과 '월튼네 사람들'을 보며 큰 우리와 달리 학교는 물론 드라마에서조차도 자연을 접하지 못한 채 자라는
요즘 아이들이 이 창의와 혁신의 시대를 어찌 살아갈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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