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6.16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 이화여대 석좌교수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 과밀과 지구온난화 때문에 앞으로 바이러스 창궐이 점점 더 잦을 것이다.
어느 날 홀연 신종 바이러스가 우리를 급습할 때까지 넋 놓고 있다가 번번이 외양간이나 고치느라
허둥대는 일을 계속 반복할 수는 없다.
이참에 우리 질병 관리 시스템이 고질적인 '후대응(reactive) 관행'을 벗겨내고
'선대응(proactive) 구조'로 선진화하기를 기대해본다.
이런 와중에 하버드 의대 연구진을 중심으로 우리 몸의 바이러스 수난사를 총체적으로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됐다. VirScan이라는 이름의 이 검사법을 이용하면 평생 우리 몸을 거쳐간 거의
모든 바이러스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다.
바이러스나 세균 같은 항원이 우리 몸에 진입하면 B세포, T세포 또는 항체가 항원 표면의
'항원결정부(epitope)'라는 화학 구조와 결합하는 면역 반응이 일어난다.
인간을 숙주로 사용하는 걸로 알려진 1000여 종류의 바이러스 항원결정부를 장착한 유사 바이러스들을
합성해 만든 일종의 항원 칵테일을 개인의 몸에서 채취한 혈액 한 방울과 섞으면 평생 바이러스에
대응해 형성된 항체들이 걸러진다. 연구진은 이미 미국, 남아공, 태국, 페루에서 모두 569명을 조사했는데,
인간은 평균 10종에서 많게는 25종의 바이러스에 노출된 걸로 드러났다.
과학은 기술 혁신에 힘입어 도약한다.
연구진은 이 기법의 활용도가 무궁무진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암, 에이즈, C형 간염 조기 발견에 기여할 수 있고, 오래전 진입했으나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았던 바이러스가
훗날 다발성 경화증(MS)이나 당뇨 같은 자가 면역 질환을 유발하는 경로도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VirScan은 이미 비용 25달러에 2~3일 정도밖에 안 걸리는 수준에 이르러 상용화가 머지 않아 보인다.
나도 모르는 가운데 어떤 바이러스가 내 몸을 들락거렸는지 개인적으로 무척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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