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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25] 요리하는 남자

바람아님 2015. 7. 14. 07:43

(출처-조선일보 2015.07.14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사진바야흐로 요리하는 남자가 대세다. 

TV를 틀면 '삼시세끼' '오늘 뭐 먹지' '냉장고를 부탁해' '집밥 백선생' 등 요리 프로그램 천지다. 

온종일 직장에서 업무에 시달리다 느지막이 귀가하던 이 땅의 평범한 남편들에게는 날벼락 같은 일이다. 

그동안은 '생계 부양자(bread-winner)'로서 돈만 벌어오면 됐는데 이젠 직접 '빵을 만드는 사람

(bread-maker)'도 돼야 한다니….

나는 일찌감치 이 스트레스를 충분히 겪었다. 

미국에 살던 시절 같이 공부하던 아내와 나는 집안일을 늘 함께 했다. 

결혼 서약의 일부로 자청한 설거지는 물론이거니와 종종 세탁기도 돌리고 청소도 하고 장도 보았다. 

나는 단 한순간도 집안일을 아내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내를 '집사람'이라고 불러본 적도 없다. 

하지만 이른바 집안일 중에서 내가 제대로 가담하지 못한 게 바로 요리였다. 

어쩌다 내가 만든 음식은 솔직히 내가 먹어봐도 맛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우리랑 가까이 지낸 미국 친구들은 한결같이 남편들이 주로 요리를 하는 부부들이었다. 

가끔 한데 모여 저녁을 만들어 먹을 때마다 나는 천하에 못된 남편으로 전락하곤 했다.

시민단체들이 은퇴한 남성들을 위해 만든 교육 프로그램 중 요리 강습이 가장 큰 호응을 얻는단다. 

한 달 남짓만 배우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요리가 이렇게 쉬운 거였어? 

이까짓 것 때문에 그동안 마누라한테 구박받은 거야?"란다. 요리하는 남자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인류는 불과 1만여년 전까지 수렵채집을 하고 살았다. 

허구한 날 빈손으로 돌아올지 모르는 남정네들을 생각해 집 주변에서 채소나 견과들을 채집해 매일 저녁상을 차리는 일은 

아내의 몫이었지만, 어쩌다 용케 잡은 사냥감을 '요리'하며 허세를 부린 셰프는 그때도 남자들이었다. 

'삼식이' 설움을 면하고 싶으신가? 

말년에 부엌데기가 되라는 게 아니라 가끔이라도 우리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허세남' 요리사 흉내를 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