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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327] 자작나무

바람아님 2015. 7. 28. 09:35

(출처-조선일보 2015.07.2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안도현 시인은 시 '자작나무를 찾아서'에서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이라고 고백했다. 
자작나무는 북반구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라서 
남한에는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자작나무 숲이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정비석 수 '산정무한'을 읽고 자란 중장년 세대는 
지구온난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중공주(樹中公主)'를 모셔다 여기저기 심었다. 
산림청도 덩달아 강원도 인제에 138ha에 달하는 자작나무 숲을 조림해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나 역시 자작나무를 좋아해 전국 어느 숲에서든 자작나무만 만나면 달려가 쓰다듬지만 
아쉽게도 정비석이 말한 것처럼 아낙네 속살보다 희거나 매끄러운 자작나무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중국 지린성 지역의 대학 및 연구소와 국제 협약을 체결하러 갔다가 드디어 백두산 기슭에서 꿈에도 그리던 
그 '아낙네'를 만났다. 물론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고 너무 반가워 달려가 끌어안고 사진까지 찍었다.

지난 7월 10일 '닥터 지바고'를 열연했던 배우 오마 샤리프가 83세로 별세했다. 
백두산 탐방이 처음이었던 나는 사뭇 낭만적인 여정을 꿈꿨던 것 같다. 
러시아 민요 '들에 서 있는 자작나무'가 테마로 들어 있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4악장 피날레를 들으며 영화에서처럼 
개썰매를 타고 천지에 오르는 그런 꿈 말이다. 비록 버스로 백두산 정상에 올랐지만 그 길가에도 자작나무는 지천이었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자작나무들의 속살은 그리 요염하지 않았다. 
이정록 시인은 그의 '서시'에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내 몸이 너무 성하다' 했고, 
우리가 탄 버스는 분명 마을에서 멀어지고 있었건만 자작나무의 몸은 결코 성하지 않았다. 
안내하던 중국 생태학자는 쉴 새 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구형 버스들이 뿜어내는 매연에 자작나무인들 배겨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사람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