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7.2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안도현 시인은 시 '자작나무를 찾아서'에서
'따뜻한 남쪽에서 살아온 나는 잘 모른다/자작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를'이라고 고백했다.
자작나무는 북반구의 추운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라서
남한에는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자작나무 숲이 없었다.
그러나 고등학생 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정비석 수필 '산정무한'을 읽고 자란 중장년 세대는
지구온난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중공주(樹中公主)'를 모셔다 여기저기 심었다.
산림청도 덩달아 강원도 인제에 138ha에 달하는 자작나무 숲을 조림해 관광 명소로 만들었다.
나 역시 자작나무를 좋아해 전국 어느 숲에서든 자작나무만 만나면 달려가 쓰다듬지만
나 역시 자작나무를 좋아해 전국 어느 숲에서든 자작나무만 만나면 달려가 쓰다듬지만
아쉽게도 정비석이 말한 것처럼 아낙네 속살보다 희거나 매끄러운 자작나무는 아직 찾지 못했다.
그러다 최근 중국 지린성 지역의 대학 및 연구소와 국제 협약을 체결하러 갔다가 드디어 백두산 기슭에서 꿈에도 그리던
그 '아낙네'를 만났다. 물론 나는 첫눈에 반해버렸고 너무 반가워 달려가 끌어안고 사진까지 찍었다.
지난 7월 10일 '닥터 지바고'를 열연했던 배우 오마 샤리프가 83세로 별세했다.
지난 7월 10일 '닥터 지바고'를 열연했던 배우 오마 샤리프가 83세로 별세했다.
백두산 탐방이 처음이었던 나는 사뭇 낭만적인 여정을 꿈꿨던 것 같다.
러시아 민요 '들에 서 있는 자작나무'가 테마로 들어 있는 차이콥스키 교향곡 제4번 4악장 피날레를 들으며 영화에서처럼
개썰매를 타고 천지에 오르는 그런 꿈 말이다. 비록 버스로 백두산 정상에 올랐지만 그 길가에도 자작나무는 지천이었다.
그러나 어인 일인지 자작나무들의 속살은 그리 요염하지 않았다.
이정록 시인은 그의 '서시'에서 '마을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내 몸이 너무 성하다' 했고,
우리가 탄 버스는 분명 마을에서 멀어지고 있었건만 자작나무의 몸은 결코 성하지 않았다.
안내하던 중국 생태학자는 쉴 새 없이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구형 버스들이 뿜어내는 매연에 자작나무인들 배겨나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사람이 가까울수록 나무는 흠집이 많다. 중국 지도자들이 이 글을 읽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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