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8.04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출간된 지 올해로 150년이다.
1862년 7월 4일 수학자 찰스 도지슨(Charles Dodgson)은 헨리 리델 옥스퍼드대 부총장의 어린 세 딸과
함께 옥스퍼드대 교정에서 가드스토우(Godstow) 마을까지 보트 여행을 한다.
심심해하는 어린 세 소녀에게 당시 열 살이던 둘째 딸 앨리스의 이름을 딴 어느 소녀의 모험담을
즉흥적으로 들려줬다. 소녀들은 그의 이야기에 열광했고 급기야 앨리스는 그에게 그가 한 이야기를
글로 적어달라고 요청했다. 이렇게 시작해 3년 후 그가 루이스 캐럴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한 이 책은
지금까지 적어도 174개 국어로 번역돼 어린이는 물론 어른도 즐겨 읽는 고전이 됐다.
종교학자 정진홍 선생님은 고전을 "되읽혀지는 책, 그래서 두 번, 세 번 다시 읽을 때마다 책도 나도 새로워지면서 삶 자체가
낯선, 그러나 반가운 것이 되도록 하는 책"이라고 정의한다.
고전의 기준이 반드시 '되읽기'일 까닭은 없지만 "되읽으면 이전에 읽을 때 만나지 못했던 새로움을 경험하기 마련"이란다.
나는 이 책을 어렸을 때가 아니라 미국에 유학하던 30대 초반에 영어로 읽었다.
지금까지 나는 이 책을 열 번 이상 읽었고 읽을 때마다 이전에 만나지 못했던 새로움을 경험하곤 했다.
사실 나는 이 책의 속편 '거울나라의 앨리스'를 더 많이 읽었다.
앨리스가 붉은 여왕에게 손목을 붙들린 채 큰 나무 주위를 숨이 찰 지경으로 달리지만 제자리걸음을 면치 못하는 이야기는
훗날 진화학자 밴 베일른(Leigh van Valen)에 의해 다윈의 '성선택론'을 가장 탁월하게 설명하는 '붉은 여왕 가설'로
재탄생했다. '성선택론'을 소개한 다윈의 책 '인간의 유래'와 '거울나라의 앨리스'가 1871년 같은 해 출간됐다.
창의성과 사기성은 왠지 백지 한 장 차이일 것 같다.
미국 작가 알렉산더 체이스는 "상상력이 가장 풍부한 사람이 가장 쉽게 믿는다"고 했다.
속는 셈 치고 창조경제혁신센터마다 루이스 캐럴의 책들을 비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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