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5.08.18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석좌교수)
키스, 알고 보니 모두가 다 하는 게 아니었다.
그동안 우리는 키스가 사랑의 표징이라는 점에 대해 추호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지상에서 영원으로' '카사블랑카' 같은 영화에서 남녀 주인공의
진한 키스에 함께 전율을 느끼곤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인류학회지에 게재된 인디애나대 연구진 논문에 따르면 세계 168개 문화에서
입술 키스는 불과 46%에만 존재한다.
아시아 문화권의 73%, 유럽의 70% 북미의 55%에서 연애 행위로서의 키스가 행해지고 있지만 중미,
아마존 지역, 뉴기니 그리고 사하라사막 이남 아프리카에서는 연인들이 키스를 하지 않는 게 전통이다.
중동에서는 조사한 10개 문화 모두에서 히잡으로 늘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중동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키스를 즐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키스의 기원에 관해서는 본능과 학습의 두 상반된 주장이 있었다.
우리와 유전적으로 매우 가까운 침팬지와 보노보는 프렌치 키스 수준의 질펀한 키스를 즐긴다.
물고기 중에도 입을 맞추는 종류가 있는 걸로 보아 인간의 키스는 사회적 또는 성적 기능을 위해 진화한 행동이라는 학설이
상당히 유력했다. 반면 학습 가설은 이유식이 개발되기 전 아직 이가 나지 않은 아기에게 잘 씹은 음식을 입으로 전달하던
풍습이 키스로 발전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몇 년 전 드라마 '아이리스'에서 이병헌이 김태희에게 한 '사탕 키스'를 보며
나는 키스의 '채이(採餌· feeding) 기원설'을 떠올렸다.
이번 연구로 일단 인간의 키스가 동물에 기원을 둔 본능이라는 주장은 설 자리를 많이 잃었다.
이번 연구로 일단 인간의 키스가 동물에 기원을 둔 본능이라는 주장은 설 자리를 많이 잃었다.
그렇다고 해서 학습 가설을 흡족하게 지지하는 것도 아니다.
성애 키스의 짜릿함을 진정 학습의 결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키스를 "사는 게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죽음에게 잠시 혀를 빌려주는 것"이라 읊은 김룡 시인은 또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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