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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서슴지 않기를, 무심치 않기를

바람아님 2015. 8. 18. 08:51

 중앙일보 2015-8-18

 

광복 70돌과 맞물려 독립군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 ‘암살’이 연일 화제다. 이번엔 표절 논란에 휩싸였다. 최종림씨가 김구 선생이 여성 저격수가 포함된 암살조를 보내 일제 요인과 친일행각을 ‘서슴치’ 않았던 이들을 없앤다는 설정이 자신의 소설과 유사하다는 것. 제작사 측은 반박하고 나섰다. 일제 고위층과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친일파에 대한 암살 작전은 항일투쟁 방식의 하나였고 여주인공 간 유사점도 없다면서다.

 

 양측의 주장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할 때 잘못 쓰기 쉬운 말이 있다. “친일행각을 서슴치 않았던 이들”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친일파”와 같이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슴치 않았던’을 ‘서슴지 않았던’으로 바루어야 한다.

 

 ‘무심하다’ ‘허송하다’가 어미 ‘-지’와 결합할 때 ‘-하-’의 ‘ㅏ’가 탈락하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무심치’ ‘허송치’로 바뀌는 것과 연관 지어 ‘서슴치’가 바른 표기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서슴하다’가 ‘-지’와 결합해 ‘서슴치’로 줄어든다는 것인데, 결단을 못 내리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는 의미의 동사는 ‘서슴다’이다. ‘무심하다’ ‘허송하다’와는 달리 어간에 ‘-하-’가 없는 말이다. ‘서슴하-’가 아닌 ‘서슴-’이 어간으로, 여기에 ‘-지’가 붙으면 ‘서슴지’가 된다.

 

 입속에 넣고만 있다, 눈물을 안 흘리고 지니다는 뜻의 동사 ‘머금다’를 ‘머금하다’로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형이 ‘머금다’이므로 “오래 머금치 마라” “습기를 머금치 않아 다행이다”처럼 사용해선 안 된다. 어간 ‘머금-’에 ‘-지’가 붙은 꼴로 모두 ‘머금지’로 적어야 한다.

 

 울림소리(모음·ㄴ·ㄹ·ㅁ·ㅇ) 뒤에선 ‘-하-’의 ‘ㅏ’만 줄어들고 안울림소리(ㄴ·ㄹ·ㅁ·ㅇ을 제외한 자음) 뒤에선 ‘-하-’ 전체가 줄어드는 현상은 어간의 끝음절이 ‘-하-’일 경우에만 적용된다. ‘수월하다’가 어미 ‘-지’와 결합하면 ‘수월치’로, ‘익숙하다’가 ‘-지’와 결합하면 ‘익숙지’로 쓰인다. ‘서슴다’ ‘머금다’는 어간 자체에 ‘하’가 없으므로 ‘-하-’의 ‘ㅏ’ 또는 ‘-하-’가 줄어들 이유가 없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