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8-18
양측의 주장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할 때 잘못 쓰기 쉬운 말이 있다. “친일행각을 서슴치 않았던 이들” “나라를 팔아먹는 일을 서슴치 않았던 친일파”와 같이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서슴치 않았던’을 ‘서슴지 않았던’으로 바루어야 한다.
‘무심하다’ ‘허송하다’가 어미 ‘-지’와 결합할 때 ‘-하-’의 ‘ㅏ’가 탈락하고 ‘ㅎ’이 다음 음절의 첫소리와 어울려 ‘무심치’ ‘허송치’로 바뀌는 것과 연관 지어 ‘서슴치’가 바른 표기라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서슴하다’가 ‘-지’와 결합해 ‘서슴치’로 줄어든다는 것인데, 결단을 못 내리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다는 의미의 동사는 ‘서슴다’이다. ‘무심하다’ ‘허송하다’와는 달리 어간에 ‘-하-’가 없는 말이다. ‘서슴하-’가 아닌 ‘서슴-’이 어간으로, 여기에 ‘-지’가 붙으면 ‘서슴지’가 된다.
입속에 넣고만 있다, 눈물을 안 흘리고 지니다는 뜻의 동사 ‘머금다’를 ‘머금하다’로 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형이 ‘머금다’이므로 “오래 머금치 마라” “습기를 머금치 않아 다행이다”처럼 사용해선 안 된다. 어간 ‘머금-’에 ‘-지’가 붙은 꼴로 모두 ‘머금지’로 적어야 한다.
울림소리(모음·ㄴ·ㄹ·ㅁ·ㅇ) 뒤에선 ‘-하-’의 ‘ㅏ’만 줄어들고 안울림소리(ㄴ·ㄹ·ㅁ·ㅇ을 제외한 자음) 뒤에선 ‘-하-’ 전체가 줄어드는 현상은 어간의 끝음절이 ‘-하-’일 경우에만 적용된다. ‘수월하다’가 어미 ‘-지’와 결합하면 ‘수월치’로, ‘익숙하다’가 ‘-지’와 결합하면 ‘익숙지’로 쓰인다. ‘서슴다’ ‘머금다’는 어간 자체에 ‘하’가 없으므로 ‘-하-’의 ‘ㅏ’ 또는 ‘-하-’가 줄어들 이유가 없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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