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8-21
“아버지의 딸”들을 우리는 안다. 한국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 대통령이 있다. 파키스탄에선 줄피카르 알리 부토 전 총리의 딸 베나지르 부토가 총리를 지냈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 수카르노의 딸 메가와티 수카르노푸르티 전 대통령, 필리핀 전 대통령 마카파갈의 딸 글로리아 아로요 전 대통령도 유사한 사례다. 이들은 대부분 아버지를 극복하는 데 실패했다.
프랑스 극우정당 ‘국민전선’ 창설자인 장-마리 르펜이 출당 처분을 받았다. 징계를 주도한 이는 딸 마린 르펜 대표다. 마린 르펜은 2011년 아버지에게서 당권을 넘겨받은 뒤 인종차별·반유대 정당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 국민전선은 지난해 5월 유럽의회 선거에서 프랑스 내 제1당에 오르는 등 약진을 거듭하고 있다. 단 하나 눈엣가시는 아버지였다. 장-마리 르펜은 지난 4월 “(나치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한) 가스실은 제2차 세계대전 역사의 (수많은) 소소한 일 중 하나”라는 망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마린 르펜은 아버지의 발언을 “정치적 자살”이라 비판하며 정계 은퇴를 요구했다. 아버지도 “2017년 대선에서 딸에게 투표하지 않겠다”며 맞불을 놨다. 부녀 갈등은 아버지의 출당 처분으로 막을 내렸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임제 선사의 ‘살불살조(殺佛殺祖)’다. 어떤 권위나 관념에도 굴하지 말고, 자신을 옭아매는 것은 무엇이든 넘어서라는 뜻이다. 마린 르펜은 그런 선택을 했다. ‘아버지의 딸’이란 고리를 끊었다.
<김민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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