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8-24
이런 분위기를 여실히 보여준 게 미 정부와 의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갖는 워싱턴의 주요 싱크탱크, 학계의 동북아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였다(본지 8월 17일자 8면, 19일자 14면). 한국 입맛에 맞는 한쪽 이야기가 아닌 ‘현실’을 보고자 친한·친일·중립 인사를 고루 대상으로 했다. 담화 발표 후 짧은 기간 안에 이들에게 답을 얻는 건 어려운 작업이긴 했다. 결과적으로 아베 담화에 부정적 평가를 내린 이는 19%에 불과했다. 역사 문제를 둘러싼 한·일 갈등의 책임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고 응답한 이는 73%에 달했다.
두 달 전 워싱턴에 부임해 외교 당국자들로부터 “역사적 정당성은 미국도 100% 한국에 공감한다. 워싱턴이 ‘한국 피로증’을 느낀다는 말은 한국에서만 하는 소리”란 장담을 많이 들었다.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이들은 잘못 생각한 것이다. “역사적으로는 90% 일본에 책임이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일본에 60%, 한국에 40%의 책임이 있다. 이게 미국 주류의 생각”이란 마이클 그린의 지적은 아프다. “미국은 동북아의 역사를 잘 모른다는 걸 우리가 간과한 측면이 있다”(신각수 전 주일대사)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 중요한 건 ‘역사’보다 ‘정치’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치’를 외치는 일본에 근접할 수밖에 없는 구도였다.
새삼스럽게 양과 질에서 앞선 일본과의 격차를 탓하고 싶지 않다. 중요한 건 확연한 현실로 드러난 한국과 미국의 온도차다. 이를 인정하고 극복하는 쪽으로 선회해야 한다. 마침 박근혜 대통령이 ‘실리외교’로 방향을 튼 듯하다. 그렇다면 한·일 정상회담은 노출된 한·미 간 온도차를 교묘하고 단번에 덮고 넘어갈 중화제(中和劑)가 될 수 있어 보인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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