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이 남성과 대등한 사회적 지위를 갖게 한 것도 명동이었다. 1970년 경향신문에는 이런 투고가 실렸다. “명동 뒷골목 술집서 남녀합석의 술파티도 아닌 순아가씨들만의 주석을 보고 깜짝 놀랐다. 10년이면 산천초목도 변한다 했지만 백년이 가도 안 변해도 좋을 것이 변했다.” “여성 상위시대가 되어 술값도 여자가 치르기가 일쑤라는 세태의 변화가 빠르기만 한 것 같다.” 여자끼리 술을 마시거나, 여자가 술값을 내는 최첨단 문화가 명동에서 시작된 모양이다.
명동은 주말 유동인구가 300만명에 이르는 한국 최고의 번화가지만 조선 말기까지도 서울 변두리에 속했다. 충무로와 명동을 잇는 진고개는 이름처럼 ‘진흙 투성이 고개’여서 살기에 불편한 곳이었다. 그러다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청일전쟁을 계기로 들어온 중국인과 일본인이 번갈아가며 명동 주변에 상권을 형성했다. 이후 명동은 1950년대까지 문학·예술인의 집결지였고, 1970년대에는 통기타와 맥주, 장발로 대변되는 젊은이들의 문화의 거리가 됐다. 앙드레 김 같은 디자이너가 터전을 잡기도 했다. 명동성당은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지로 불렸다.
2000년대 이후 쇠퇴하는가 싶던 명동 상권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한 설문조사 결과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자유여행객이 인터넷으로 가장 많이 검색한 곳은 명동역이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600만명이 가장 많이 찾은 명소도 명동이다. 명동에서 먹고, 쇼핑하고, 문화를 즐긴다. 옛 명동 신사가 오늘날 중국인 관광객으로 바뀐 것이다. 100년 전 해외 문화를 받아들이는 전초기지였던 명동. 이제는 외국인에게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곳으로 탈바꿈했다. 미래의 명동은 또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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