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책·BOOK

나치 역사에 가려졌던 일 천재들 꺼내보기

바람아님 2015. 11. 1. 08:20

(출처-조선일보 2015.10.31 유석재 문화부 기자)


저먼 지니어스 책 사진저먼 지니어스 | 피터 왓슨 지음 | 박병화 옮김 | 글항아리 | 1416쪽 | 5만4000원

18~19세기 독일 학계에선 낭만주의 스타일의 자신만만함과 위풍당당함이 읽힌다. 
베를린대 총장을 지낸 철학자 피히테는 학문이 인류를 부단히 진보시키리라는 기대 속에 
"지식은 그 자체로 인간 문화의 한 분야"라고 했다. 언어학자 훔볼트의 목소리 역시 웅장하기 
이를 데 없다. "대학은 그 자체가 목적이며, 가장 깊고 광범위한 의미에서 학문을 닦는 곳이다."

실로 '장엄한 빛'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크 시대인 18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3세기에 걸친 
시대의 독일은 세계 그 어느 곳보다도 창조적인 에너지가 넘치던 지역이었다.

영국에 대학이 두 곳뿐이던 1700년대에 독일 전역엔 이미 50개 대학이 있었다. 교육받은 중산계층이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유럽 세 번째 르네상스'와 '두 번째 과학혁명'이 일어난 곳도 독일이었다.

그 시기 '독일 천재'들의 목록은 눈부실 정도다. 
철학에는 칸트와 헤겔과 쇼펜하우어와 니체, 문학에는 괴테와 실러와 릴케와 브레히트, 
음악에는 하이든과 베토벤과 슈베르트와 브람스, 과학에는 멘델과 슈뢰딩거와 하이젠베르크와 아인슈타인이 있었다.

휴대하기 버거울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면면히 이어진 이들의 정신사(精神史)와 상호 영향을 세심하게 짚고, 
이 영화(榮華)의 세계가 1933년부터 단 12년 동안 독일을 지배한 나치의 역사에 가려져 있음을 안타까워한다. 
절친했던 바그너와 니체가 어느 날 갑자기 사이가 나빠진 이유는 
'니체가 사창가에 갔다'는 걸 발설한 의사의 실수 때문이라는 등 흥미로운 뒷얘기도 많다.